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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Nov 24. 2022

잊으려면 익숙해져야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무렵 나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었다. 일찍이 아들이 영어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부모님은 1년 단기 어학연수를 결정하셨고 당시 나는 그곳에서 살게 될 수영장이 있는 콘도와 공부하게 될 학교 사진을 보고 멋모르고 신나는 마음으로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내가 살아온 순간들 중 가장 걱정 없이 늘 신이 나있던 때로 기억한다. 학교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모인 친구들을 만났고 방과 후에는 집에 돌아와 수영장에서 몇 시간이고 매일같이 시간을 보냈다. 행복했던 1년간의 말레이시아 생활을 마무리할 때 즈음 엄마와 아직 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던 남동생은 먼저 한국으로 귀국했고 학기가 남아있던 나는 당시 만난 이웃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남은 한 달가량을 지냈다. 홀로 남겨져 있던 그때 학기를 마무리하며 학교에서 수련회를 떠났다. 수련회 장소는 겐팅하이랜드였는데 이름처럼 높은 산 정상에 위치한 리조트였다. 높은 고도 때문에 1년 내내 덥고 습한 말레이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긴팔의 외투를 걸치는 곳이었다. 그런 뜻밖에 환경에서 난생처음 떠난 수련회에 조만간 헤어져야 했던 친한 친구들과 함께한 터라 정말 즐겁고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높은 산 정상에서 출발한 버스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워낙 수련회 기간 동안 정신없이 지내 지칠 법했음에도 나는 옆에 앉은 친구와 쉼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버스가 그 좁고 가파른 길을 아주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더니 불과 몇 초 후에 쿵 소리와 함께 전방 산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충돌 상황에서 앞 좌석 헤드에 이마를 꽤 강하게 부딪혔고 난생처음 겪는 교통사고에 너무나 크게 놀랐다. 어안이 벙벙한 그 상황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버스에서 내리자 충돌한 산벽 반대편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에 들어온 그 장면은 사고로 인한 충격보다 더 큰 아찔함을 느끼게 했다. 불과 몇 미터도 되지 않는 산벽의 반대편에는 충돌 시 이탈을 절대 방해할 수 없어 보이는 위태로운 가드레일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다. 이십 대 끝에 닿아있는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직접적으로 경험한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었다. 




사고소식을 접한 부모님께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더 씩씩한 목소리로 통화하며 안심시켰고 크게 다치거나 불편한 곳이 없어 나 역시 그저 다행이었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지나왔다. 


괜찮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국에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역 근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버스를 탔을 때였다. 말레이시아에 가기 전부터 자주 타던 버스였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그 버스에 올라탔다. 그 버스의 노선 중에는 가파르게 꺾어져 내려오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지날 때 사고 당시 느꼈던 버스가 기울어질듯한 그 느낌에 공포가 얹혀 다가왔다. 너무 놀란 나는 내려야 할 곳에서 하차벨도 누르지 못하고 몇 정거장을 더 지난 후에야 간신히 진정하고 내릴 수 있었다. 이 일을 겪은 후에는 거리와 시간이 더 길어졌음에도 굳이 그 길을 우회하는 버스를 이용했다. 이외에도 차 안에서 익숙지 않은 냄새가 나는 일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당시 사고의 원인은 브레이크 파열이었는데 충돌 몇 분 전부터 타는 냄새가 났었다. 그 기억은 이후 아빠 차를 타고 가다가도 자동차 내 순환 버튼이 켜져 있어 바깥 냄새가 들어올 때면 차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며 요란을 떨게 했다. 그렇게 그때 사고가 내게 준 충격은 삶의 여러 순간순간에 자리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학원을 마치고 어김없이 집까지 한참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내가 두려워하는 길을 지나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빨리 타라고 나를 재촉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일과 또 그것을 들키는 것이 싫었는지 나도 모르게 그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면서도 올라타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버스에 몸을 실은 내내 긴장했고 그 구간을 지날 때는 저절로 두 눈이 질끈 감겼다. 여전히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원래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올 수 있던 그날은 내게 참 여러 생각이 들도록 했다. 


이후에도 대부분 한참을 돌아가는 버스를 이용했지만 이따금씩 빠른 마을버스를 타는 도전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그 구간을 지날 때 느끼는 두려움이 조금씩 또 아주 천천히 줄어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 순간에 나를 애써 가져다 두며 잊고 싶던 두려움을 익숙함으로 극복해 나갔고 성인이 될 즈음에는 더 이상은 그때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여러 비극 속에서 때때로 만나는 행복을 겨우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다. 그렇기에 잊는다는 것은 축복으로 여겨진다. 잊으려면 잊으려는 무엇인가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그것을 떠올리는 사람, 장소, 냄새로부터 멀어진다면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자리하는 두려움, 슬픔, 분노 등을 느끼도록 한 그 순간은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고 또 반복하는 삶에서 일어난다. 그것들로부터 멀어져 봐야 얼마나 멀어질 수 있을까. 긴 인생에서 아무리 발버둥 치고 애써도 잊기 위해 멀리했던 그 순간에 다시 놓이는 순간이 온다. 


내가 지독했던 그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경험은 잊으려면 무뎌져야 하고, 무뎌지려면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내가 가졌던 트라우마보다 훨씬 더 끔찍한 기억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기에 함부로 내 말을 신뢰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그 순간을 다른 기억으로 채울 여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잊기 위해 익숙해지는 일에 도전해 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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