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만 할 수 있는 걸까?
스무한 살까지 국민의 의무 중 내가 감당해내고 그 무거움을 느끼는 직접적 경험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병무청은 신체검사 1등급을 부여했고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어느새 입대의 순간이 찾아왔다. 입대 날 아침 부대 부근 짜장면 집에서 부모님과 마지막 식사를 했다. 첫 한 젓가락을 입에 넣자 단번에 내공이 깊은 아주 맛있는 짜장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날의 식사는 딱 두 젓가락에 그쳤고 채 절반도 먹지 못했다. 그만큼 당시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과거 나의 경험들은 힘들 것을 미리 인지하며 최악을 예상하고 어떤 일에 뛰어들면 비교적 쉽게 일이 풀린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때문에 입대를 목전에 둔 당시 내가 느끼던 두려움은 모순적이게도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 교훈은 내 군생활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입대 전 예상했던 어려움보다 더 최악을 고려했어야 했다. 배치된 중대에서 처음 만난 중대 최고참 병사의 계급은 일병이었다.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 집단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의 나였음에도 뭔가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내가 전입을 옴으로써 중대 정원은 채워졌고 이는 당시 최고참이 전역하며 내가 상병이 될 때까지 중대의 막내라는 나임을 의미했다. 잔심부름 및 잔업 처리는 모두 나의 담당이었고 이 핑계 저 핑계로 경계근무를 들어가지 않는 선임의 구멍을 메우는 사람 역시 나였다. 군 복무 중 이런 경험이 없는 이 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야속하게도 이는 내가 상병 진급을 앞둔 군생활 11개월가량 지속되었다. 다른 중대 동기들의 후임이 들어오고 그 후임의 후임이 들어올 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내가 속한 중대에서 가장 서열이 낮았다.
마음을 비우고 내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놀랍게도 그 생활에 조금씩 적응을 했다. 11개월에 가까운 중대 막내라는 지독한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한 나였으나 도무지 괴로움이 나아지지 않는 일이 있었는데 경험자가 모두 인정하듯 그곳에서의 인간관계였다. 나를 지독히 괴롭히면서 동시에 영악했던 선임 하나가 나를 바닥으로 내몰고 또 내몰았다. 이해할 수 없는 욕설은 기본이었으며 선을 넘을 듯 말 듯 우리 부모님과 관련한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아주 과격한 한방이 없을 뿐이었지 꼬집고 짓누르며 진압봉과 같은 손에 들리는 무엇인가로 툭툭 때리면서 간신이 붙잡고 있는 나의 평정심을 박살내기 일수였다. 꾸준한 금품갈취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와 조를 이뤄 들어가는 탄약고 초소 경계근무는 앞서 언급한 부조리의 환장 파티이자 생지옥이었다. 그가 영악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중대 생리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내가 당한 일을 고발했다면 그를 영창 입창은 물론 타부대 전출을 보내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그는 내가 그러지 못할 것을 알았다. 중대장은 어떤 식으로든 발생하는 문제를 쉬쉬하고 덮으려 하는 사람이었다. 또 내 소속 중대는 정원이 매우 소수로 구성되어있었음에도 담당하는 임무는 다른 중대에 비해 비상식적으로 많았다. 내가 그를 고발할 시 한 명의 결원이 채워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며 그때까지 각 중대원 일과의 강도가 가중되며 내가 느낄 압박감을 그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참고 참고 또 참았다. 스스로가 미련하다고 자책하면서도 참았다. 군대가 참 재미있는 것은 힘의 이동을 몸소 경험할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을 버티며 나에게는 없을 것 같던 후임들도 여럿 들어오고 어느덧 분대장 직책마저 달았다. 뒤이어 들어오는 후임들은 군생활을 더 오래 함께 할 사람이 나임을 알았고 그렇게 그 선임이 취해있던 권력은 나에게 넘어오며 나는 우리 중대의 실세가 되었다. 그때부터는 나에게 폭격처럼 이루어졌던 그 선임의 부조리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할 수 있었다.
그 오랜 시간 막내로서 이일 저일 불려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간부가 많았으며 일과와 해당 주특기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어있었다. 또 마침 인사이동으로 소속 중대장이 바뀌었고 새로운 중대장이 실무 적응하는 일을 도우며 신뢰를 쌓았다. 하루는 중대장과 함께 창고로 장비를 가지러 가고 있었는데 부근 탄약고 초소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초소에서는 그 선임과 중대 후임 하나가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우리가 초소 아래까지 온 것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그 선임은 개버릇 남 못주듯 나에게 하던 그대로 진압봉으로 후임이 머리에 쓰고 있던 방탄헬멧을 흠씬 두드리고 있었다. 중대장이 버럭 고함을 쳤고 그들이 근무가 끝나자 중대 전원이 행정반에 집합을 했다. 예상대로 그 선임은 장난이었을 뿐이었다며 후임에게 물어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나는 바로 후임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따로 대화를 나누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중대원 여럿은 그 선임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내가 당한 그 일들을 똑같이 당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중대장을 찾아가 후임들과 내가 당했던 일을 고발했고 진술서 3장을 빼곡하게 채워 제출했다. 내 예상보다도 신속하게 그의 15일 영창 집행과 전출이 결정되었다. 며칠 뒤 그가 영창을 가는 날 흡연실에 있던 그 앞에 가서 보란 듯이 오른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나도 모르게 나오는 실소를 애써 숨기지 않으며 "잘 가라"라는 말과 함께 지긋지긋한 그 악연의 당사자와 작별을 했다.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일말의 측은한 마음 없이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사람이며 또 그 미워하는 마음에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않게 해 준 유일한 사람이 그였기에 너무나 통쾌했다. 그 선임이 그렇게 가고 주위 간부나 부대 사람들은 잘했다며 네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안다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나의 성실함으로 쌓아온 신뢰가 그에게 통쾌한 한방 복수를 하는 일에 아주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통쾌한 그 상황에서 그러한 위로가 이상하게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힘이 있어야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보였다. 나 역시 그 부조리에서 해방되었단 사실에 그 선임이 다른 후임들을 타깃으로 괴로움을 주고 있단 사실을 미쳐 살피지 않았다. 막내 때의 나처럼 힘없는 후임들은 그렇게 부당한 처사를 겪어야 했다.
힘이 있어야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이 명제는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일을 보고 있자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긴 시간을 감내해야 하고 아주 소수만이 원하는 바를 달성한다. 힘을 키운 후 하는 복수는 너무나 통쾌하지만 큰 힘에 닿지 못한 힘없는 사람은 포기하고, 사고가 나고, 죽고, 혹은 스스로 다른 누군가에게 나쁜 놈이 된 그제야 그들이 겪은 부당함이 겨우나마 세상에 알려진다. 화가 나고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똑같이 힘없는 나는 어떤 변화나 대안을 제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 이 명제가 사실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일부터 해보자. 이 의문 제기가 나 자신과 우리의 소중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죽지 않고, 나쁜 놈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 될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상식적인 이상에 조금씩이나마 가까워지는 것일 테니 말이다.
... 이상은 조금 더 진보적이어야 하고 조금은 비현실적이어야 하는데
바라는 이상이 상식적이라니 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