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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Feb 24. 2023

봉사도, 위로도 아니었구나

봉사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그 의미를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이라 말하고 있다. 고등학교 생활 3년간 했던 나의 보육원봉사에 이러한 의미를 대입해 보니 과연 그때의 내가 쏟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나의 마음을 봉사라 칭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따라온다. 


친했던 친구는 매주 수요일 방과 후에 학교선생님 한분과 보육원봉사를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가 나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는데 나는 이를 오로지 나의 득이 무엇일까를 따지며 아주 계산적으로 반응했다. 그 당시 미국에 있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던 나는 정규 교과과정 이상으로 대외활동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의 대입조건을 떠올렸고 나의 입학지원서의 근사한 한 줄을 채울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러 그때부터 매주 서울에 위치한 보육원에 나갔다. 봉사라는 명목으로 갔지만 실제로는 그곳의 아이들과 식사하고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이 주였고 가끔 그들의 영어공부를 도와주는 것 정도였기에 과연 내가 수고로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질 정도로 어려운 일은 없었다. 


봉사의 정의가 제시하는 첫 번째 조건인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는 나의 득을 따져 내린 결정이었기에 이에 부합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조건인 "힘을 바쳐 애쓴다"도 내가 부담을 느끼도 아주 큰 열심을 기울인 일이 없기에 지금까지 내가 보육원봉사로 기억하는 그때의 일은 결코 봉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선한 의도에도 좋지 못한 결과를 손에 쥘 때면 우리는 이 빌어먹을 세상을 욕하고 저주하며 그 감정의 풍파를 어쩔 줄 몰라하지만 이기적인 의도에도 예상치 못한 값진 결과 맞닥뜨릴 때면 그저 내게 일어난 행운정도로 생각하며 그 결과를 소중히 여기지 않곤 한다. 나의 이득을 따져가며 내린 이기적인 결정이었음에도 보육원에서 너무나 감사한 인연들을 만났다. 그중 특히 마음이 아주 이뻤던 친구 한 명과는 꽤 오래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 인연을 이어갔다. 


나는 그 아이에게 든든하고 기댈 수 있는 형이자 마음의 어려움이 있다면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관계에 시작점에서부터 꽤 오랫동안은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설 수 있었다. 그러다가 군대, 학업, 취업 등 나의 현실적인 문제를 감당해 내는 일이 버거워지고 그 과정에서 여러 좌절을 지나오며 내가 나를 초라하다고 느끼는 순간부터는 그 아이 앞에 나서는 일이 꺼려졌고 그렇게 소중한 인연과 속절없이 손을 놓았다. 


위로를 건네려던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위로받았다는 말이 우리 사는 세상에서 어느 순간 꽤 흔한 경험담이 되었다. 과연 옳았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그 아이에게 위로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당시에는 있었고 그런 마음으로 시작된 관계에서 오히려 그 친구로부터 많은 고마움과 따뜻함을 느꼈으니 나 역시 이러한 경험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계과 소원해진 이후에도 그 아이를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이전에 우리에게 있었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보육원을 나와 자립하고 정작 든든한 형이 필요했을 그 아이에게 나 자신을 돌보기 바빠 자취를 숨겼던 그때의 내게 더 큰 한심함을 느낀다.




봉사를 하고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그때의 나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면 참 마주하기 싫은 못난 사실이 있다. 나의 이 두 행위가 향하는 이보다는 내가 우월하다는 전제조건 위에 가능했던 일이란 것이다. 누군가의 부족한 무엇인가를 채워주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봉사와 위로를 행하는 이들이 많이 있겠지만 나의 봉사와 위로는 이토록 추하고 못난 사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상황과 여건에서 상대보다 내가 우월할순 없겠지만 상대가 갖지 못한 무엇인가를 보며 함부로 측은한 마음을 가졌고 그것이 나를 그럴듯한 명목하에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내가 초라하다는 생각을 가지자 그 아이 앞에 더 이상 나타나지 못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결국 그때의 내가 쏟은 작은 시간과 노력은 봉사도 위로도 아니었다. 과거의 많은 감사한 기억마저 스스로 부정하는 것 같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 모든 토대는 나의 건방짐이었다. 


부끄러운 그때의 마음을 지금에서라도 마주하고 인정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사실과 대면이 앞으로 내가 할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쓰는 일과 누군가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주는 일에 있어 더 이상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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