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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Oct 07. 2022

새어 나오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더라도

환절기 비염환자의 넋두리

어느새 공기가 조금씩 차가워지고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했던 여름이 지났다는 후련함과 가을이 주는 낭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전에 내게는 이 시기마다 지나야 하는 관문이 있다. 나는 선천적 비염환자다. 어릴 적부터 기관지에 좋다하는 한약은 참 많이 먹었고 소위 비염 수술이라고 불리는 하비갑개 절제술도 받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계절의 변화가 다가오면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나의 코였다. 놀라울 정도로 코와 눈이 가렵고 재채기가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가 차가워지거나 따뜻해졌다. 




나의 재채기가 시작되면 우리 엄마의 깊은 한숨도 같이 새어 나왔다. 또 시작이구나하는 마음이 한숨의 깃들어 있음을 알고 있다. 나의 비염을 치료하고자 쏟은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헌신적이었다. 적잖은 노력에도 스무 살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까지 매 환절기마다 이 상황의 반복이다 보니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본인도 혼란스럽겠지만 야속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재채기가 나오기 직전의 상태에서는 세상이 잠시 정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와중 터트려내야 한다는 일념 그 하나만 남는다. 그렇기에 재채기 그 자체보다 나오기 직전의 상태가 훨씬 곤욕스럽다. 비염은 이 불쾌한 간질간질함을 하루 온종일 감내해야 하는 질병이다. 괜찮은척하고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 것이 비염의 잔인한 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염 증상 자체만도 견뎌내기 버거운 내게 엄마의 안타까움 섞인 탄식이 얹히면 그 상황이 너무나 힘이 든다. 세수하다가 코만 풀어도 화들짝 놀라 또 코가 말썽이냐며 달려와 묻는 우리 엄마다. 오랜 반복의 상황은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나의 재채기를 그녀의 트라우마가 되도록 했다. 


새어 나오는 감정이야 통제가 가능한 부분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감정이 특정한 대상으로 뻗어나갈 때면 우리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그 감정이 부정적인 성격을 띄운다면 더욱 그렇다. 서운함이란 감정이 새어 나와 누군가에게 향한 다면 우린 그 서운함을 표하기 전 그 사람에게 느끼는 서운함이 과연 타당한가를 따져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나와 엄마는 이 지긋지긋한 비염이라는 문제를 앞에 두고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이 상황이 지쳤는지 나를 나무랐다. 그렇게 좋은 약을 먹이고 수술도 받게 했으면 평소에 잘 관리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 잘못을 따졌다. 나는 한 공간에 살고 먹는 것과 생활 습관도 비슷한 상황에 내 관리가 뭐 얼마냐 소홀했겠냐며 이게 다 유전 때문이지 무슨 다른 원인이 있겠냐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반복되는 암울한 상황에서 서로의 지치고 힘든 감정을 엄마와 나 모두 엉뚱한 상대에게 향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프고 힘이 들 때 감정은 더욱 자기 마음대로 생겨나고 더더욱 자기 마음대로 누군가를 향해 뻗어 나간다. 그것을 그저 지켜보는 일, 내 감정을 의심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신뢰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 무책임이 상처받지 않아도 될 누군가를 상처받게 하고 모두가 어쩔 수 없었던 일임에도 그 문제의 원인과 무관한 사람에게 근거 없는 책임을 묻게 하기도 한다. 특히 그 책임을 요구당하는 원인과 무관한 이가 사랑하는 존재라면 뒤에 감당해야 하는 씁쓸함의 크기는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훨씬 컸다. 그래서 적어도 감정은 제멋대로 튀어나가는 재채기와는 달라야 한다.


오늘 아침 또 훌쩍이며 일어난 나에게 엄마는 비염에 좋다는 곰보배추 달인 물을 건넸다. 지난번 결코 엄마의 책임이 아닌 일에 엄마를 나무랐던 일이 후회되고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 감정은 꽤 타당하고 그 방향도 옳은 것 같다.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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