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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Sep 17. 2022

조언과 위로가 마음에 닿으려면

특별하고 이상했던 비자 인터뷰

대학에 합격 후 내가 가장 먼저 준비해야 했던 일은 미국 대사관에서의 비자 인터뷰였다. 미국 대학에 합격하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비자인 줄 알았는데 이래저래 관련한 소식을 찾아보니 대학에 합격해 놓고도 비자 인터뷰에서 승인을 거절받아 발목을 잡히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는 먼저 유학길을 떠난 선배들에게 연락을 해 어떻게 이 과정을 준비를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에게서 들은 대답은 하나같이 유학원을 통한 준비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가장 편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주 여유로운 형편에 떠나는 유학이 아니었기에 그 비용이 적든 크든 간에 시작부터 부수적인 비용을 들여 부모님의 부담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경험하지 못한 일을 준비하고 또 잘 해결하는 것을 보여드려 아들을 타지로 떠나보낼 생각에 걱정이 많으셨던 부모님이 느끼는 불안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절차를 스스로 확인하고 준비해 인터뷰 당일 광화문에 위치한 주한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출입하는 곳부터 경계가 매우 삼엄해 긴장이 몰려왔다. 겨우 출입절차를 지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소에 가서  시간이 넘도록 대기를 했다. 휴대폰을 제출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 인터뷰 전까지 시간을 때울  읽을 책을 가지고 갔는데 책이 눈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대기장소에서 인터뷰 창구가 보였는데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많은 인원이 승인 거절을 받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여성분은  자리에 주저 않자 울며 망연자실해하기도 했다.    시간 보고 있자니  역시  차례가 오기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냥 유학원을 통해 준비할 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고 혹시나 빠트린 서류는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렇게 길었던 대기시간이 지나 나의 차례가 다가왔고 한 창구 앞에 섰다. 그 창구 안에는 백발에 나이가 꽤 지긋해 보이는 백인 영사가 있었다. 긴장한 탓에 아무런 인사말도 꺼내지 못하고 준비한 서류만 전달했다. 제발 준비한 질문만 해주길 바라며 그 영사를 바라보았다. 내 서류를 훑어보며 건넨 그의 첫마디는 "오, 좋은 학교!"였다. 뒤에 몇 가지 서류를 더 보고는 나에게 "여권 주세요"와 "다 됐어요"라는 말과 함께 나는 입도 제대로 떼지 않고 비자가 승인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영사가 뱉은 이 모든 말은 영어가 아닌 한국말이었다.


그 긴 대기시간 동안 크게 긴장했던 게 민망할 정도로 비자 승인은 신속하고 또한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미국 체류를 승인받으러 간 자리에서 영사가 친절하게 한국말로 말을 건네며 인터뷰를 했던 사례는 그 어떤 인터넷 후기에도 발견할 수 없었고 선배들에게 묻고 나를 뒤이어 비자 인터뷰에 다녀온 친구들에게 물어도 나에게만 있던 예외적이며 이상하고 특별한 일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과 선생님은 제대로 미국 대사관에 찾아간 것이 맞는지 장난스럽게 또 걱정스럽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날 내게 일어났던 특별한 일은 그 영사가 내가 가는 학교 출신 혹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거나 그 순간 유독 기분이 좋았던 것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일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고 변수를 예상하고 대비하기에 관련한 정보가 충분치 않았기에 비자 인터뷰를 준비하며 많은 걱정이 있었다. 결과를 받아 드니 사실 그리 크게 걱정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말하면서도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배부른 소리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뒤따라왔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그날 그곳에서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 그 여성이 떠올랐다. 나는 승인이 되었고 그녀는 거부당한 비자이기에 나는 옳았고 그녀는 틀렸던 걸까? 나는 결코 그렇게 그 일을 결론 내릴 수 없었다. 그녀가 어떤 비자를 신청했는지 그저 지켜만 본 것이기에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창구 앞에 들고 제출한 서류의 양과 한참을 영어로 대화하던 모습만 보더라도 정말 많은 준비를 했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목표를 갖고 그 창구 앞에 섰던 나와 그녀가 받아 든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날 나의 경험처럼 우리가 도전하는 어떤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쉬울 수도 있고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상황이 전개되어 우리를 매우 난처하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다른 이에게 어렵게 적용되었던 문제가 나만은 예외적인 방법으로 쉽게 다가올 수도 또는 그 반대 일 수도 있다. 운이라고 일컬어지는 쏟은 노력 외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상황에 우리는 참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없이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확신을 더디 하고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일어난 일을 결과로만 해석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며 건네는 조언과 위로는 자신에게 일어난 행운에 감사하지 않고 상대에게 야속하게 적용된 빌어먹을 불운을 이해하지 않는 오만이다. 때문에 이런 조언과 위로는 결코 상대의 마음에 닿을 수 없다. 내가 감히 다른 이에게 조언과 위로를 전할 때면 그 본연의 의미를 잃지 않도록 그날 광화문에서의 특별하고 감사한 일을 통해 느낀 이 생각을 결코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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