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엄마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맛이 아주 좋았던 피자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식사하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어느 날 엄마는 결심한 듯 그 가게에 나가 몇 개월 동안 일을 배웠다. 그리고는 얼마 후 근처 상가에 자리를 얻어 뚝딱 피자집을 차리고 장사를 시작했다. 엄마는 집안 형편과 경제 사정 등 여러 고민을 안고 일을 시작했을 터였으나 어렸던 나는 그 상황에서 계산하고 재며 고민할 것이 없었고 그저 원할 때마다 피자를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그래서였는지 개업 첫날 무료시식행사를 할 때 나는 반 친구를 잔뜩 데리고 가 그들에게 피자를 대접하며 한껏 으스댔었다. 피자박스 접는 일은 엄마를 퇴근하고도 계속 일하도록 했는데 그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나에게 이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보다 빠르게 박스를 접는 내가 자랑스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엄마에게는 여전히 비밀이지만 배달 알바를 했던 형이 종종 몰래 오토바이를 태워줘 신나게 달려보기도 했다. 이렇듯 당시에 엄마는 참 고생스러웠겠지만 나에게는 그때가 아주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 이모는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마땅히 장사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우리 집 근처 상가에 자리가 나 그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던 나는 근처 이웃들과 학교 친구들이 자주 들리는 그 가게의 사장이 우리 이모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기를 바랐다. 가게에 심부름을 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모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도망치듯 그곳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하루는 엄마가 내가 다니던 학교 체육대회 때 이모네 떡볶이를 반 친구들에게 대접하자는 제안을 했다. 어떻게든 우리 가족이 떡볶이 장사를 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나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고 나는 노발대발하며 그 일을 저지시켰다. 돌이켜보면 성실했던 이모를 초라하게 했던 나의 생각과 행동이 너무나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와 이모 둘 모두 성실했고 본인들의 가정에 헌신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피자 장사를 한 일은 으스댈 만큼 자랑스러웠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으면서 이모의 떡볶이 장사는 부끄러워했다. 똑같은 마음과 비슷한 방식으로 정성스러웠던 그들의 노력을 다르게 정의 내렸던 이유는 사안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나의 세계의 깊이가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나에게 원할 때마다 피자를 먹는 일만큼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은 없었다. 어린 내가 가진 나의 세계에서는 엄마의 피자 장사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수단이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당시 방영하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심취해 있었는데 드라마를 보며 화려하고 호화로운 삶을 꿈꾸던 나의 시선에 이모의 떡볶이집은 너무나 초라하게 비쳤다. 그 좁고 편협한 나의 세계로는 이모의 정성과 노력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다.
세상의 진리를 조금도 담아내지 못한 자신의 세계로 세상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일은 자신과 주변인들을 위태롭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합리화하며 누군가가 성실한 노력으로 칭찬받아야 할 일을 상처받도록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나마 성인 이전에 시기에는 이러한 많은 오류들이 참작이 된다. 키가 멈추고 우리의 신체적 성장이 정점을 맞이한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비추어보는 자신의 세계는 여전히 성장판이 열려있어야 하고 고쳐야 할 오류투성이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기준은 완성되었다며 더 이상 자신의 세계를 수정코자 하지 않는 우리의 닫힌 마음은 우리를 계속 그 자리에 머물도록 한다.
다양한 생각을 하고 내가 굳게 믿고 지켜나가는 생각들의 반론을 맞이하면서 나의 세계를 지우고 넓혀가는 일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만 우리가 가지는 확신이 누군가에게 옳은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상처를 주고 있다면 꺾이고 구부러지며 새로운 담금질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나의 편협한 세계로 소중한 이들에게 주는 상처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당장에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후에 오류를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