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일들의 결과가 좋든 그렇지 않든 그 일을 돌아보고 거름 삼아 늘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애써왔다. 그러한 발버둥은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냈고 과거의 나와 다른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할 때면 정체되어있지 않다는 안도감을 느끼도록 했다. 그렇기에 무엇인가 이루고 기뻤던 순간만큼이나 힘들고 아팠던 순간에게도 감사함을 가진다. 지독했던 군 복무 시절의 경험까지 이리 생각하는 나를 보면 이 말의 진정성의 진위는 분명 참일 것이다. 결코 긍정적인 경험이라 말하지 못하는 일에서 조차 건설적인 결론을 찾으려 애쓰는 나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결코 좋게 포장이 되지 않는 일이 있다. 가장 소중한 친구가 나에게 진절머리가 나도록 해 나와의 관계를 포기하게 만든 그 순간이 그렇다.
주변을 밝게 만드는 친구였다. 순수하고 엉뚱했으며 여린 듯 단단했고 삶을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정말 멋지다 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길었던 중고등학생 시절 남자인 친구들에게도 쉽게 열지 못했던 깊은 속을 무장해제시키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느새 가까워졌고 서로를 가장 친하고 소중한 친구라 여겼다. 물론 잦은 투닥거림이 있었고 그때의 여느 청소년들처럼 작은 일에 쉽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 친구를 참 많이 지치도록 했던 것 같다. 나는 화가 나고 서운함을 느끼면 입을 닫는다. 문제를 대면하고 대화로 서로 가진 생각을 나누며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에게 나의 이런 태도는 너무나 큰 답답함을 느끼도록 했다. 더 큰 문제는 그 서운함이 잦아들어도 다시 입을 여는 일에 너무나 미숙했다는 거다. 마음과 같지 않게 어쩌다 꺼낸 말에는 개연성 없이 날이 서있었고 힘들게 그 친구가 내민 손을 다시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의 닫힌 입과 이따금씩 새어 나왔던 무례한 말들 앞에 무력감과 답답함을 느꼈을 그 친구는 이 상황의 반복을 겪으며 나와의 관계에서 손을 놓았다.
관계의 실패, 그것도 거리낌 없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친구와의 관계의 실패는 나를 참 초라하게 만들었다. 뒤늦게 이를 만회하고자 사과의 메시지를 보내며 어떻게든 바로잡아보려 했지만 그 친구 마음의 새겨진 나를 향한 서운함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컸던 것 같다. 또 애써 다시 화해하고 이전으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문제를 반복할 거란 사실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의 다툼에서 나는 반드시 이기고자 했다. 실수와 마주하면 반성하고 발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나의 잘못이고 실수임을 인정하는 것은 언제나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이기고자 사력을 다했다. 내가 이기는 방법은 그 상황에서 감정을 숨기고 한동안의 침묵의 시간을 가지며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이 침묵의 시간을 상대가 보인 결함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문제의 근원인 듯 포장하고 나의 결함을 보완할 그럴듯한 변명을 만드는데 활용했다. 나는 이렇게 이겨왔다. 나와 대립하고 경쟁해야 하는 누군가와의 다툼에서 이만큼 내가 원하는 결과를 보장하는 방식은 없었다.
얼마 전 엄마와 크게 다투었는데 이번에도 나는 입을 닫고 한동안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내게 먼저 사과를 하셨다. 엄마 입에서 어렵사리 나온 그 사과의 말은 오히려 내 마음을 비참하게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까지 그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하는 생각이 그제야 비로소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소중한 사람과의 다툼에 있어서 너무나 미숙하고 한심한 대처를 반복하는 스스로가 너무나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나와의 관계 회복을 외면하고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그 친구의 선택이 현명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친구를 비롯해 나와 다투었던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전한다. 나는 그들과 다툴 때 원수와 다투듯 했다. 다투더라도 그들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마음을 살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반드시 이기도록 해주었던 나의 다툼의 방식은 나에게 가장 큰 상실을 안겨주었다.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할퀴는 일을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이 사실과 직면했다. 미련하게 너무나 큰 값을 지불하고 이제야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의 비슷한 상황에서는 갈등과 다툼이 있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십 대의 나의 가장 커다란 기억은 상실이다. 지금에서야 그 일을 올바르게 마무리 지은 내가 앞으로 닿을 삼십 대 끝자락에서는 부디 다른 기억과 감정이 자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