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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Oct 27. 2022

담배 원정

니코틴 중독자의 주를 넘나든 기행

드라마나 영화 혹은 글에서 보수적인 가정환경을 묘사할 때 주인공이 느끼는 답답함과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더욱 짙게 표현하곤 한다. 굳이 부류를 나누자면 우리 부모님은 보수적인 사고를 지녔지만 매체에서 표현되는 집안과는 다르게 내게 항상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는 분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모나지 않으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꽤 성실한 아들의 역할을 다해왔다. 


부모님의 버거운 바람조차 감당하려 애썼고 그것이 어릴 적부터 내게 부여된 환경에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라 믿고 살았다. 군대는 그런 나의 세계를 뒤흔들고 내가 걸어가려 했던 내 앞의 놓인 길에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게 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다 못해 병든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 정도로 가혹한 곳이었지만 모순적이게도 내게 있어 자유롭고 다양하게 생각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준 곳 또한 군대였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연과 생각을 가진이들이 모인 곳이었고 저마다 부모님의 속을 들끓게 한 이야기 하나씩은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다사다난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저 부모님 기대를 충족하려 애쓰기에 급급했던 샌님이었단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들의 부모님 속 썩인 이야기가 감명 깊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들의 선택과 주장을 통해 옅어진 부모님 영향 아래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동경심을 가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제는 다르게 살겠다며 오랫동안 지켜져 왔던 가족이 주는 안정감 또한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군대에서 배운 담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번민하던 내게 나름의 소심한 반항과 해방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쉽게 만족감을 주고 일탈을 경험케 하는 일이 흡연이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복학을 한 후에 이는 더 이상 쉬운 방법이 아니었다. 주마다 담배 요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미국에서 하필이면 내가 살던 뉴욕은 전미에서 가장 높은 담배 가격을 부과하는 주였다. 4500원이면 구매할 수 있던 한 갑의 담배를 그곳에서는 12불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구할 수 있었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아낌없이 지원받으며 하던 유학생활이 아니었기에 뉴욕의 담배 가격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미 크게 의존하고 있던 담배를 끊는 결심은 당시 나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차마 가늠이 되지 않는 넓은 땅에 살다 보면 내가 지도의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더더욱 그곳의 생활에 익숙해지면 굳이 알아야 하는 이유조차 사라진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살던 곳을 그저 막연하게 맨해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지역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교양과목으로 지리 수업을 듣던 중 당시 내가 있던 곳이 사실상 뉴욕과 펜실베니아 주의 경계에 위치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은 펜실베니아 담배 가격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펜실베니아의 담배 가격은 7불이 조금 넘었다. 차를 10분 정도만 타고 가면 주를 넘을 수 있었고 근처 주유소 매점에서 5불에 가까운 금액을 덜 지불하고 담배를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매주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펜실베니아주에 가서 한주 치 담배를 사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내 몸에 일절 좋을 것 없는 담배를 위해 참으로 수고로운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담배를 끊은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미련하고 부질없는 일에 참으로 부지런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일을 몸에 좋지 않은 담배를 끊은 금연 성공기 정도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나를 크게 변화하도록 만든 일이기 때문이다. 미련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일은 내게 있어 반항이었고 그저 순응하며 나를 위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채우는 일로부터의 일시적인 해방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무조건적인 순응을 하는 아들이 아닐 수 있었다. 이 시작이 없었다면 계속해서 부모님 희망대로 살아가려 애쓰는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으며 여전히 나를 주체로 두고 무엇인가 결단하고 선택하지 못하는 샌님이었을 거다.


여전히 주체적으로 결단하는 나로 변모했던 그 시작점이 담배였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금 더 건전하고 몸을 해하지 않으면서 나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을까 하는 후회가 남긴 한다. 이런 아쉬움을 가지면서도 이 결론에 닿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느낀다. 과거 나의 수고로움과 몸을 해하면서까지 간절했던 일이 의미가 없지 않아서 그렇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 노력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도록 해준 그때의 미련한 수고로움에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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