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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Jan 11. 2023

본선진출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나를 의심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내가 아니길

성악을 그만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멋진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그 시간보다 길어졌을 만큼 긴 세월이 지났다. 그럼에도 종종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마 지금의 내가 꿈을 안고 설레며 살았던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게 아닌가 싶다. 꿈이라는 말 앞에 턱 말문이 막히거나 비소를 머금은 태도를 보이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원하고 바라던 결과가 주어질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이 흔들리고 벽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일이 있었다. 한 콩쿠르에 참가하여 예선전을 치르고 본선 진출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정곡을 부르는 대회였고 준비한 곡이 워낙 까다로워 무대에 오르기까지 참 많이 애를 태우던 대회였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는 좋은 성적을 냈던 다른 대회에서 느꼈던 후련함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본선진출을 걱정할 정도의 실수나 부족함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대기를 하다 본선진출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그 명단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럼에도 나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좋은 성적을 기대한 엄마도 적잖이 당황한 가운데 애써 나를 토닥였다. 우리 중 가장 당황스러워한 사람은 레슨 선생님이었다.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선탈락할 무대는 아니었다며 계속 아쉬워하셨다. 고민하시던 선생님은 결국 대회 행정처에 이의제기를 했고 바로 몇 분 후 내가 왜 예선통과 명단에 들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누락이었다. 본선진출이 가능한 성적을 거두고도 행정적인 오류로 나의 이름이 누락되었고 대회사는 이를 거듭 사과하며 나의 이름을 본선진출명단에 추가했다.




그 길지 않았던 순간에 믿어 의심치 않던 결과가 주어지지 않자 지난 나의 결정과 쏟은 노력을 의심하고 자책했다. 다른 곡을 부를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고 그 무대에서의 나의 호흡과 눈빛 등 세세한 평가요소가 될만한 하나하나를 곱씹기까지 했는데 명단에 이름이 없던 이유가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 참 많이 허탈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무대를 막 마쳤던 그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내 기준에서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본선에는 진출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자신감은 왜 명단에  나의 이름이 없자 그 모습을 감춘 것일까? 그날처럼 때때로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나의 것임에도 아니라고 말하는 결과 앞에 나는 그저 낙담하며 나를 나무라는 일이 참 많았다.


얼마 전 배우 겸 가수 이승기가 연말 연기대상에 나와 수상소감으로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이런 일을 물려주면 안 된다고 오늘 또 다짐한다"라는 말을 했다. 많은 것을 내려놓는다는 말속에는 그 역시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하며 제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을 나무라는 씁쓸한 과정을 지나오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지나온 길을 신뢰하는 선택을 내렸다. 그 반면 나는 쏟은 노력을 배신하는 결과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나의 흠만을 돌아보고 있다.


그가 이기고 또 바라는 세상이 오길 나 역시 간절히 바라본다. 내가 이루고 쟁취한 결과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마저 의심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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