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산적 Sep 07. 2022

줄리어드, 놓았던 꿈과 다시 만났던 날

예체능 전공자들이 의례 그렇듯 내가 성악을 시작했던 계기 역시 우연한 사건과 예상치 못한 인물로부터의 추천이었다. 유치원생 시절 장기자랑을 준비하던 중 내 노래를 들은 원장님은 내 목소리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우리 부모님께 알렸다. 국내 유명대학의 성악과 출신이었던 원장님의 말은 우리 부모님께 아들을 키우며 처음으로 자신들이 몰랐던 자식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고 또 인정받는 놀라운 순간을 선사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 당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다고 평가되는 콩쿠르와 동요제에서 대부분 입상을 하며 내 재능이 이중에서도 참 특별하구나 하는 당돌한 생각을 가졌다. 노래를 하는 순간에는 나의 특별함을 인정받는 것 같아 그것이 참 좋았던 어린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되는 목표를 가졌다. 


자연스럽게 세계 최고의 음악학교를 가겠다는 생각이 따라왔고 우리나라에서 소위 줄리어드음대로 불리는 줄리어드 스쿨은 어린 내가 꿀 수 있던 꿈에 정점이었다. 세계적인 성악가라는 목표는 너무나 막연하고 추상적이었다. 줄리어드는 그 아득한 꿈에 구체성을 더해주는 내게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변성기를 지나며 나의 재능의 빛은 바래졌고 당연하듯 해오던 콩쿠르 입상도 더 이상 이뤄내지 못했다. 여러모로 마음이 어수선하던 그때 당시 중학교 짝꿍이 가지고 다니던 mp3에 담긴 힙합 음악을 들려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음악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점차 나를 지치고 지루하도록 했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잃는 큰 계기였다. 재능 부족의 실감과 함께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음악을 나의 평생의 업으로 삼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가졌던 내 꿈을 놓아주었다.




이후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또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미국 뉴욕주에 있는 한 대학에 진학했다. 1학년 첫 학기를 지나고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맨해튼에 가보았다. TV와 책에서만 보던 놀랍고 또 익숙한 그 장소에 내가 와있다는 사실이 나를 매우 설레도록 했고 그저 시티 길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존재가 된 마냥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센트럴파크에 가고자 하염없이 맨해튼 북쪽 방향으로 걸었다. 걷던 와중 웅장하고 현대적인 건물 앞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외벽에는 학교임을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있었는데 무슨 학교이려나 하고 다가가 보니 그 깃발에는 "Juilliard"라 적혀있었다. 간절하게 바랐던 나의 꿈이라 말하기 부끄럽게도 나는 줄리어드 스쿨이 뉴욕 맨해튼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지난날 놓아주었던 그때의 꿈을 다시 마주했다. 우두커니 그 건물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고 그때의 간절하며 현실을 모르고 순수했던 내가 떠올랐다.


종종 드라마 혹은 현실에서 과거의 꿈을 상기시키는 무엇인가를 다시 마주하면 그 꿈에 대한 미련을 붙잡고 그 꿈에 다시 도전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다행히도 줄리어드를 눈에 담은 나는 과거의 향수에 잠시 젖을 뿐이었다. 




줄리어드에 가겠다는 막연한 꿈을 좇던 어린 나는 정말 간절했다. 시간이 흐른  어릴  꿈의 대상과 마주하니 당시  꿈을 놓아주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적당한 흡족함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꿈은  우리를 설레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꿈을 좇는 본인과 그것을 응원하는 주변인을 매우 애처롭게 하기도 한다. 변성기   이상 나의 재능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아들이 품은 꿈을 누구보다도 이루기를 바라고 응원했던 부모님 역시 점차 부담이 늘어가는 뒷바라지에 부침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줄리어드를 마주하고 느낀 흡족함은  애달팠던 꿈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사실과 그때의 길을 고수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새로운 인연과 경험에 대한 감사함에서 비롯되었던  같다.




실패로 점철될 수 있는 그때의 꿈이지만 패기 있게 도전했고 또 놓아주었기에 지금 내가 소중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믿는다. 성악을 할 때는 오직 클래식, 오페라 곡만 들어야 하는 줄 알았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나의 꿈을 이루는데 한눈팔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라 믿었다. 성악을 그만두고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다양한 음악을 어떠한 죄책감 없이 자유롭게 듣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최애가수는 아이유가 되었고 새로운 멋진 음악을 듣는 일은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한동안 듣지 않던 클래식도 어느 순간 다시 듣게 되었다. 어릴 적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 말고도 음악 그 자체가 매력 있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역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목소리는 파바로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현재 내 삶에는 과거 좇았던 꿈의 부산물이 존재하는데 나의 음악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렇다. 발라드, 힙합, 팝 꽤나 보편적인 여러 장르의 음악 속에 성악가들이 부른 클래식곡들이 더해져 있다. 가끔 저장된 곡의 목록을 훑어보다 보면 스스로 느끼기에도 이런 괴랄한 잡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나의 과거와 현재가 기록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꽤 애정이 간다.


그날 줄리어드 스쿨을 바라보며 가졌던 마음처럼 미래의 나 역시 지금의 내가 꿈에 얽매여 느끼는 애처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하며 흡족함을 느끼길 바란다.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꿈을 이뤄 성취감을 만끽하는 일이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로 인해 새로운 순간을 만나고 또 지난 노력의 부산물을 누리고 있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전 01화 갯벌 가는 길에 내렸던 나의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