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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적 Aug 16. 2022

갯벌 가는 길에 내렸던 나의 선택

일상을 마주하다 내린 작은 선택이었고 삶의 여러 기억 중 아주 큰 조각으로 자리하지는 않지만 늘 나의 마음에 불편함으로 남아 있는 어떤 하루가 있다. 그날 갯벌 가는 길에 내린 선택은 지금의 나를 결정해 벼렸고 여전히 나는 그때와 비슷한 길에 놓여 있을 때면 같은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전교생 규모가 10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대안학교를 다니며 중고등 학창 시절을 보냈다. 여느 다른 학교와는 규모와 분위기에서 큰 차이를 가지는 학교였다. 수련회 역시 다른 학교들이 대규모 수련회장을 빌려 그곳에서 며칠 생활하다 오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적당한 일반 펜션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다. 여느 때처럼 충남 태안에 작은 펜션으로 학교 수련회를 떠났다. 수련회 마지막 날 자유시간에 친구들 여럿과 함께 근처 갯벌에 다녀오자 해서 길을 나섰다. 주어진 자유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길을 나서고 30분이 지났는데도 갯벌과 해안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장 발걸음을 돌려도 주어진 자유시간 안에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불안했다. 선생님들이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은 인원을 찾고 난리가 날 상황이 이미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그러면서도 선생님들께 혼이 날 테니 우리 이만 돌아가자고 친구들에게 말해 범생이가 되는 것 또한 싫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겠다며 무리에서 이탈해 혼자 펜션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어진 시간을 조금 넘겨 혼자 펜션에 도착했다. 상황을 훑어보니 마무리하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게 아닌 자유시간이 길어지는 분위기였다. 예정된 자유시간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갯벌에 다녀온 친구들이 돌아오고 나서인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자리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싣었다. 혼자 돌아오는 선택을 내렸던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었다. 정해진 시간을 넘긴 친구들이 혼이 나지 않았고 나 역시 친구들을 저버리고 홀로 돌아온 배신자로 낙인찍히지 않았다.


그날 그 상황에 어렸던 내가 내린 선택은 당시에는 합리적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예정대로 일정이 진행되었다면 어느 한쪽에서도 지지받지 못할 선택이었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다른 친구들을 설득해 데리고 오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친구들에게는 혼자 혼나는 것이 두려워 발걸음을 돌린 비겁한 선택을 내린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누구 하나 혼이 나거나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나만은 예외였다. 그날 갯벌에서 해맑게 찍힌 사진에 내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도 컸으나 그것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내가 내린 비겁한 선택이 내 마음을 참 오랫동안 불편케 했다. 




당장 눈앞에 결과를 가져다주는 선택이 있는 반면 결과를 바로 실감하지 못하지만 삶에서 지속적으로 그 순간과 재회하도록 하는 선택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살아오며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당사자가 되지는 않으며 그 순간 나만이 불편한 상황에서 예외가 되도록 하는 많은 선택을 내려왔다. 그러한 선택은 당장 예상되는 문제에서 나를 구해주었지만 이후에 마주하는 나만이 느끼는 부끄러움을 견뎌내야 했다.


당장에 어려움을 겪기 싫어 이후에 마주하는 부끄러움을 홀로 견뎌내야 하는 선택을 할 때마다 나는 다시 그날 갯벌 가는 길에 놓였다. 나의 선택이 모든 상황과 사람을 만족할 수 시킬 수 없다면 부디 앞으로의 나는 당장 편하고 후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아닌 당장에 문제를 견디며 후에 후련해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다시 그 갯벌 가는 길에 놓인다면 다른 선택을 하는 나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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