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성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참가한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레슨 선생님과 부모님이 주는 칭찬이 아닌 공식적인 대회에서 인정을 받자 나는 한껏 기고만장하며 나의 재능이 참 특별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애국조회라는 이름으로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는 지루한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구령대에 나가 학교 대표로 콩쿠르에 참가해 1위를 해온 것을 치하하는 상장을 받자 나는 학교에서 '노래하는 애'가 되었다. 그 와중 학예회가 다가왔고 내가 선보일 장기는 당연하게도 노래였다. 학예회 당일 콩쿠르 참가 때 입었던 하늘색 블라우스와 검정 7부 바지를 그대로 입고 나가 노래를 불렀다. 당시 나에게 가장 자신 있는 일이었고 공식 대회에서 인정도 받았겠다 떨릴 것 하나 없이 준비한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내려왔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바로 이어지는 무대를 위해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그 무대에 올랐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질 만큼 내가 노래 다음으로 준비한 장기는 에어로빅이었다. 방금 전까지 점잖게 정갈한 복장으로 노래를 부르고 내려갔던 아이가 상하의 모두 짧은 초록 형광색 에어로빅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박장대소하며 자지러졌고 클론의 '발로 차' 음악에 맞춰 준비한 에어로빅 춤을 추자 방금 전 노래를 했던 무대보다 더 큰 박수와 함성을 받았다.
얼마 전 방구조를 바꾸다가 책장에서 떨어져 우연히 열어본 사진첩에서 그 화려한 옷을 입고 안무에 열중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자 한참을 웃음이 터져 나왔고 아주 오랜만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사실 그 에어로빅 무대는 내가 나서서 하고자 했던 일이 아니었다. 노래, 악기 연주, 마술공연 등 그 당시 학예회에서는 꽤 뻔한 레퍼토리가 있었다. 그런 뻔한 장기자랑에서 탈피하고자 담임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반 친구 남녀 세 쌍을 묶어 에어로빅 무대를 기획했고 그렇게 우리는 학부모 중 한 명이 운영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학교 근처 에어로빅 학원에 한 달가량 다니며 학예회 무대 준비를 했다. 내가 꼭 참여하겠다고 나서지도, 못하겠다며 거부의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던 그 이벤트는 자신이 담임하는 반의 무대가 더 다채롭고 돋보였으면 하는 어른의 욕심으로 진행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담임선생님은 성악을 하는 터라 무대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으로 나를 선택했지 않나 싶다.
나의 의사를 밝힐 기회는 없었고 그저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 나도 모르게 에어로빅 학원에 나갔고 그 화려한 의상을 입고 그날 그 무대에 올랐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그 모든 일을 기획했던 선생님을 아주 많이 원망했을 거다. 살아오면서 자신이 가진 힘을 믿고 무작정 어떤 일을 추진하며 따라오기를 강요하는 어른을 만나며 그 앞에 묵살되는 나의 의사와 느끼는 거부감 모두를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좌절에 빠지곤 했기 때문에 그렇다. 에어로빅 사건도 내가 만나온 욕심 많은 어른들이 일을 전개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당시 담임선생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잊을 수 없는 즐거웠던 순간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앞선다.
지나온 날의 일들이 나에게 어떠한 결론에 닿도록 해주었는지에 대해 글을 써오고 있다. 그렇기에 그 결론을 통해 느끼고 배운 감정과 교훈을 글에 담으려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여러 이야기와 그 일을 지나 닿은 나의 결론을 담겠지만 그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한들 나의 결론이 정답이라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어떠한 상황과 물질에 적합한 오직 하나의 단어만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일물일어설처럼 이 에어로빅 무대의 기억은 어떠한 순간을 지나며 내가 닿을 결론은 다른 경험을 통해 얻지 못할 오직 특별한 하나일 것이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비슷하다고 한들 다 똑같지 않다고 말이다.
지난주 서점에 책 구경을 갔다가 제목과 작가의 말을 훑어보며 뻔한 내용이겠거니 하고 내려놓은 책이 계속 눈에 밟힌다. 나에게 분명 조금의 특별함과 이전에 닿지 못한 결론을 주었을 수도 있는 책을 나의 지레짐작이 앗아가 버린 것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