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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맘 Jan 25. 2021

자녀를 부채도사로 만들지 말자

(양육은 일관성이 생명이다)

나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파트타임 보육교사, 상주 도우미까지 육아를 도울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동원해야 했다. 요즘 직장맘들이 출근하면서 아이를 보육시설에 등원을 시키고, 퇴근하면서 하원을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예쁘다’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꿈꾸던 것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마저 든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수시로 비상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몇몇 직업을 가진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모습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을 자랑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오히려 자녀로 인한 업무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사실은 더욱더 티 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 자녀 양육이나 집안 대소사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자녀 양육을 하면서 수시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로 인해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에 많은 직장맘들이 부모님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게 된 경우에도 양육의 형태가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부모님 댁에 자녀를 데려다 놓고 주말이나 휴가 때 찾아가는 경우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양육을 지원받는 경우가 있다. 나는 자녀와 떨어져 있기가 싫어 시부모님께 함께 살기를 요청했고 그렇게 우리는 한 집에 3대에 걸친 동거가 시작되었다. 


아마 모두들 예상하겠지만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자녀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말씀을 수시로 하시는 부모님의 수고로움을 덜어드리려고 파트타임 도우미를 구해보기도 했고, ‘더 이상 못하겠다’며 두 손 두 발 들고 퇴장을 요청하시는 바람에 상주 도우미를 구해서 함께 살아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0년을 넘게 함께 살았다.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시부모님과의 동거가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 동안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는 것에 존경의 마음(?)과 박수를 보내주고, 이에 으쓱해진 나는 “시부모님과 한 두 해 산 것은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거다. 내 몸에서 곧 사리가 나올 거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대가족 생활을 하면서 쉽지 않은 것 중에 한 가지가 자녀 양육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자신의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지 않을 때는 이 부분에 대해 간과했었다.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 있는 할머니의 말씀도 잘 들어야 하고, 물리적으로 적은 시간을 함께 하지만 엄마인 내가 하는 말도 새겨 들어야 하는데, 두 어른의 다른 반응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고민 아닌 고민을 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나는 이런 사실을 아이들이 한참 크고 나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평소에 할머니 스타일에 길들여진 아이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면서 내 눈에 불편한 것들에 대해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나의 말에 하던 행동을 멈추던 것이 전부였던 것을 넘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할머니는 이렇게 해도 된다고 했는데, 엄마는 왜 안된다고 하세요?’라며 항의성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 그러면 엄마가 할머님과 얘기를 나눠보고 다시 말해줄게”라고 하고 그 상황을 넘겼다. 


무릇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아빠, 심지어 고모까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다 보니 혼란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양육의 중요한 양대 축인 나와 할머니 사이만이라도 합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몇 시에 밥을 먹고, 간식은 언제 무엇을 먹일 건지 등 등 먹고 자고 하는 일상에서는 할머니의 룰을 따르지만 교육과 훈육에서는 엄마인 내가 기준이 되도록 맞추어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교육과 훈육에서 어른들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다른 태도를 보인다면 아이들은 기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고무엇보다 옮고 그름을 분별하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혼란이 생긴다. 성인인 나를 비추어 보아도 이것은 분명하고 중요한 일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아이들도 양육에 관여하는 사람이 많으면 때마다 헛갈리고 어려운 것이 생긴다. 양육에 정답은 없지만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기준이 꼭 엄마일 필요는 없다. 누구이든지 한 사람이 기준을 삼아야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수고롭고 힘들지만 직장을 유지하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우리들의 목표는 한 가지 ‘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한 아이’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부모님의 수고로움을 동원하기도 하고, 심지어 경제적인 대가를 치르면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목표를 잃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양육의 일관성이다. 상황에 따라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부채도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꼭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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