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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맘 Jan 25. 2021

엄마로서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포기하지 말자

(힘들게 키울수록 모성애는 커진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내게 직장에서의 퇴근은 저녁 일과의 시작이다. 직장에서 일의 양이 적지 않고 맡은 직책 또한 가볍지 않아 출근 시간은 남들보다 빠르고 퇴근 시간은 늦다. 다행히도 나는 집에서 자녀를 돌봐 주는 부모님이 계셔서 낮 시간에는 그나마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집에 들어설 때가 다반사다. 퇴근과 동시에 엄마가 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잠자고 있는 아이들의 몸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불을 켜면 잠에서 깰지도 몰라 핸드폰 불빛으로 한 명 한 명 비추어 가며 만져본다. 다친 곳이 있으면 약을 발라주고 거칠어진 피부에는 로션을 두 번 세 번 발라준다. 그럴 때면 엄마의 손길을 아는 것처럼 살짝살짝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참 신비로운 것이 엄마 눈에만 보이고, 엄마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내 몸속에서 분리된 나의 분신이기 때문일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었지만 애기들의 몸만 살펴보아도 건강상태가 예측이 되고, 낮 동안 잠깐 통화를 하면서 들었던 목소리에서 애기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대다수는 애기들이 잠들었을 때 출근과 퇴근을 하다 보니 토요일 아침이 되어야 얼굴을 보기가 일쑤지만 우리는 분명히 통하는 것이 있다. 


물리적으로 나의 수면시간은 3~4시간이 전부였다. 혹여 야근이 많이 길어지거나 애기들의 컨디션이 나쁘면 밤을 꼬박 새울 때도 많다. 어떤 날은 일이 많아 야근을 하다 새벽이 될 때도 있다. 그러면 다른 동료들은 사무실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잔다. 하지만 나는 일단 집에 가야 한다. 가서 꼭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수면시간과 휴식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퇴근 후 엄마를 해야만 하루가 오롯이 끝난다. 이렇게 해야만 직장인과 엄마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어느 하나도 절대 포기할 수 없기에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산다. 


나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내게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자식한테 어지간히 해라, 다 소용없다’, ‘너는 모성애가 너무 강한 것 같다’라고.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는 모성애가 남다른 사람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수긍이 간다. 


모성애는 자녀를 향한 엄마의 본능적인 사랑이고, 부모와 자식은 천륜 지간으로 하늘의 인연으로 정해진 사회적 또는 혈연적 관계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모성애가 본능이다라는 사전적 정의는 절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함께 살지 못하고 자주 살을 맞대지 않으면 서로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특히 군인들은 직책을 자주 옮겨 다니다 보니 자녀를 조부모님께 의탁하는 경우가 많다. 동기생들 중 다수 인원이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조부모님 손에 키우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동기들이 하나같이 ‘내 자식인데도 어색하고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신체적, 정신적 성장 속도가 우리가 자랄 때보다는 확실히 빠르다. 그러다 보니 평균적으로 사춘기도 일찍 찾아오는 것 같다. 사춘기가 찾아온 아이들은 말수가 적어진다. 그런 아이들과 유년시절에 함께 한 추억마저 없다면 대화를 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공통 관심사도 없고 같이 추억할 기억도 없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상황도 같지는 않기 때문에 섣부른 정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에서 내린 결론은 가능한 자녀들을 곁에 두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처음에는 잦은 이사와 생활환경이 어려운 격오지 보직 등 근무여건의 불비함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분리였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런 혼자 있음에 익숙해져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엄마로서 수고로움을 감당하는 것을 겁내게 된다. 


물론 직장을 다니며 엄마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사실 매우 어렵고 힘들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가름할 수 없다. 하지만 엄마로서 수고로움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다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아빠도 엄마가 될 수는 없다. 일부 역할을 대신하거나 바꾸어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무엇이다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자녀는 때에 맞추어 엄마에게서 받아야 할 피드백이 있다. 


내가 경험한 분명한 사실은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반복하며 힘들수록 자녀에 대한 책임감 즉 모성애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커지는 모성애만큼 자녀들과의 관계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엄마라면 당연한 감정이라 여겨지는 모성애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함께하기를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았음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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