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78)

제378편 : 황인숙 시인의 '꿈'

@. 오늘은 황인숙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1998년)


#. 황인숙 시인(1958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한때 동아일보에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를 연재하면서 시 읽기 붐 조성하는데 기여함.

이 시인을 ‘4無시인’이라 부르는데, ‘집, 돈, 남편, 아이’ 등 4가지가 없어서 붙여졌고, 또 ‘4有시인’이라고도 하는데, ‘시, 친구, 무소유 정신, 베풂의 미덕’ 등 4가지를 가져서 붙여진 별명이라 함.




<함께 나누기>


사랑과 이별은 만고불변 모든 예술 작품의 소재입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고 특히 시는 더하지요. 헌데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한 시는 대부분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오늘 시는 아주 담담합니다. 정말 사랑을 노래했을까 의심할 정도로.

슬픈 감정을 표현할 때 눈물 펑펑 쏟아지도록, 아니면 눈에 이슬이라도 글썽이며 혼자 흐느끼는 사람을 보다가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꿈에서 너를 보면 아, 내가 꿈꾸고 있구나, 하고 알아챈다.’라는 표현을 보면 확실히 다릅니다.


한때 사랑했다 헤어졌던 사람이 꿈속에 나타납니다. 당연히 꿈꿀 당시에는 모릅니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 믿으며 둘의 사랑은 다시 이어지려 하는데... 갑자기 방해하는 어떤 사람(또는 상황)이 나타나 더 이어지지 못합니다. 잠에서 깨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요.


그때 꿈에 나타났던 그이의 얼굴을 한 번 떠올려봅니다. 분명 헤어질 당시와는 다릅니다.

꿈속에서 만난 그이와 그 옛날 과거 속에 실존했던 그이는 다릅니다. 꿈에선 얼마나 나긋나긋하고 부드럽든지요. 하지만 실존했던 그이는 전혀 아닙니다. 차디찬 얼음처럼 냉랭했고 나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꿈속의 그이는 계속 말을 건네며 헤어지길 아쉬워하는데, 실존의 그이는 무슨 이유를 대든 내게서 멀어져 갈 궁리만 했습니다. 꿈속의 그이는 오래도록 곁에 머물 것처럼 말과 행동을 하나, 어느 순간 ‘이건 현실이 아니고 꿈이야’ 하고 눈치채면 희미해져 갑니다.


이제 그이를 꿈 아니고선 볼 수 없습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찢어지게 하지만, 한편 꿈에서나마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할까요. 아닙니다. 이제 그이와 완전한 이별을 준비해야 합니다. 눈을 뜨면 사라질 얼굴, 닿을 수 없는 사람이라 잊어야 합니다.


그리움에도 무게가 있다면 현실보다 꿈에서 더 무거울까요? 그리움에도 선명도가 있다면 현실보다 꿈에서 더 선명할까요 꿈에서 그이 보고 난 그날엔 일손도 잡히지 않습니다. 눈을 뜨면 그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데 꿈에서는 왜 그리 뚜렷이 보였을까요?



여름밤은 덥습니다. 아무리 선풍기 털어놓아도 시원했다가 더웠다를 반복합니다. 그러니 깊은 잠 얕은 잠이 반복되고. 그런 날은 꿈도 많이 꾸게 됩니다. 아련하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꿈, 잠에서 깨어나 꿈이란 걸 알았을 때 허탈감을 느낄지언정.

그나마 다행입니다. 꿈에서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아직 기회가 남았으니까요. 이젠 만날 수 없는 사람, 그래도 꿈에서는 만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 만나면 용기 내 말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시 한 편 덧붙입니다.


- 비 -

황인숙


저처럼

종종걸음으로


나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고


싶다…


*. 황인숙 시인이 쓴 「비」란 제목의 작품이 둘 있습니다. 둘 다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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