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84)

제384편 : 오성일 시인의 '밥을 잊는다'

@. 오늘은 오성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밥을 잊는다
오성일

책상머리에 앉아서
밥 먹고 사는 나와
화물차 몰아서
밥 먹고 사는 태식이와
아파트 경비 서서
밥 먹고 사는 병수와
가끔 밥 먹기도 힘들다는 진호가
넷이서 둘러앉아
술을 먹는다

문밖으로
밥 굶은 짐승처럼 바람이 우는데
오늘은 딴 생각 먹지 말고
술이나 먹자고
술을 먹는다
문턱 너머 추위는 칼칼하고
뱃속은 얼큰해서
더불어, 밥 생각
잊기 좋은 날이다
- [사이와 간격](2017년)

#. 오성일 시인(1967년생) :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2011년 [문학의 봄]을 통해 등단. 현재 KBS본부 ‘수신료 국장'을 맡고 있어 정부에서 추진하는 ’KBS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하여 뉴스에 더러 나옴.




<함께 나누기>

재작년 어느 날 시민단체 모임에서 알게 돼 형 아우 하면서 지내는 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형, 울산 나오소. 내가 물회 한 그릇 살게요.”
그는 집 짓는 일 가운데 ‘섀시(chassis : ‘샤시’는 잘못된 표기)’ 전문입니다. 하루 일당 30만 원 받는 고급 일꾼이지만 일감이 적어 늘 쪼들리는 처지입니다.
그 말에 형편이 좀 나아졌는가 하여 물었더니 더 안 좋은 상황인가 봅니다. 3년 전 어깨 수술로 반년 놀았고, 얼마 전엔 일하다 갑자기 기운 딸려 주저앉았다고 하니... 물회를 그가 아닌 내가 사주면서 만나고 싶었지만 그날 오후 다른 약속이 있어 함께 하지 못하고 다음을 약속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이 동생이 떠오름은 4년 전 가을에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울산에 볼일 보러 나갔다가 집에 아내도 없어 냉장고 뒤져 챙겨 먹느니 차라리 사 먹는 게 낫겠다 싶어 그에게 밥 먹자고 전화했습니다. 그도 마침 일 끝내고 식사하러 갈 참이었다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도 되겠느냐고 해 별생각 없이 같이 오라고 했습니다.
함께 온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집 짓는 일하는 두 사람으로, 한 이는 벽에 타일 붙이는 일을, 또 한 이는 벽돌 쌓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밥보다 술이 고팠는지 그들은 돼지껍데기 안주로 술부터 마셨는데, 술이 들어가니 처음 어색한 분위기는 이내 사라지고, 둘 다 나를 형이라 부르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아는 양 편해졌습니다.

헌데 술이 오르면서 편한 사이는 더욱 진도가 나가 아무 말이나 해대는 사이가 됐습니다. 둘 중 하나가 먼저 이런 투로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는 썌(혀)가 빠지게 대갈빡이 터지게 일해도 하루 벌어먹고 살기 바쁜데, 공무원은 편안하게 일하다가 은퇴해도 연금을 두둑이 받아 잘 먹고 잘 산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인정했습니다. 시처럼 “책상머리에 앉아서 / 밥 먹고 사는” 비교적 편한 일을 했다면 그들은 막노동판에서 거친 일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연금 받아 생활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면서 나름의 해명도 했습니다.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남 보기에 쉬워 보이나 실은 그렇지 않다고.

그 정도의 해명이 먹혀들지 않아 거칠어지려는데 다행히 동생이 중간에 분위기를 잘 다독거려 기분 나쁠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거친 말을 내뱉은 이가 나중에 술에 취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난처해졌지만.
술만 취하면 우는 주사(酒邪)를 가졌다고 했지만 그가 울면서 내뱉은 말은 아직 귀에 남아 있습니다.
“형, 왜 세상 살기가 이리도 ㅈ같이 힘들지요. 우리 같은 사람이 좀 살 수 있도록 세상이 도와주면 안 되나요? 없는 사람만 자꾸 힘들어지는 ㅈ같은 세상!”

욕으로 매듭짓는 끝말에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시에서처럼 “문밖으로 밥 굶은 짐승처럼 바람이 우는” 날이었습니다. 술을 마셔도 밥 한 공기 뚝딱 해야 되는 체질에도 밥 생각 전혀 나지 않던, “더불어, 밥 생각 잊기 좋은 날”이기도 하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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