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5편 : 양애경 시인의 '조용한 날들'
@. 오늘은 양애경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조용한 날들
양애경
행복이란
사랑방에서
공부와는 담쌓은 지방 국립대생 오빠가
둥당거리던 기타 소리
우리보다 더 가난한 집 아들들이던 오빠 친구들이
엄마에게 받아 들여가던
고봉으로 보리밥 곁들인 푸짐한 라면 상차림
행복이란
지금은 치매로 시립요양원에 계신 이모가
연기 매운 부엌에 서서 꽁치를 구우며
흥얼거리던 창가(唱歌)
평화란
몸이 약해 한 번도 전장(戰場)에 소집된 적 없는
아버지가 배 깔고 엎드려
여름내 읽던
태평양전쟁 전12권
평화란
80의 어머니와 50의 딸이
손잡고 미는 농협마트의 카트
목욕하기 싫은 8살 난 강아지 녀석이
등을 대고 구르는 여름날의 서늘한 마룻바닥
영원했으면… 하지만
지나가는 조용한 날들
조용한… 날들…
- [맛을 보다](2011년)
#. 양애경 시인(1956년생) : 서울 출신으로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이 시인의 별명이 ‘맛詩 요리사’인데 그만큼 시를 맛있게 잘 쓴다는 뜻이며, 한국영상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
<함께 나누기>
산골마을에 살다 보니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공기 좋고, 물 맑고, 경치 아름다운 곳에 사시니 늘 행복하시겠습니다.”
그러면 제 대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아뇨 늘 좋지는 않습니다. 다만 비 온 뒤 계곡을 타고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올라 올 때는 절로 눈을 감습니다. 덧붙인다면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코로 입으로 확인할 땐 제 사는 곳이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하구나 합니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행복이나 평화는 너무 커서 잡을 수 없거나, 너무 멀어 찾아갈 수 없거나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너무 작아서, 너무 가까워서 놓치거나 잊기 쉬울 뿐이지요. 지나고 나면 정말 행복과 평화는 바로 곁에 있었는데 하며 후회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제가 만들어 쓰는 ‘모기날(모처럼 기분 좋은 날)’이든 생활하는 주변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자는 뜻이지요.
시인이 행복으로 설정한 항목을 나열해 봅니다.
‘그리 뛰어나지는 않으나 가끔씩 들려오는 오빠의 기타 소리’,
‘엄마의 정성이 담긴 라면 한 그릇과 곁들인 고봉 보리밥’.
‘치매기 있는 이모가 예전에 꽁치 구워주며 부르던 노랫가락’,
평화로 설정한 항목을 나열해 봐도 특별하진 않습니다.
‘배 깔고 엎드려 전쟁 이야기를 읽는 아버지’,
‘노모와 딸이 손잡고 미는 농협마트의 카트’,
‘여름날 서늘한 마룻바닥에 등 부비는 강아지’.
다 특별한 일들이 아닌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어느 누구든 손 내밀면 바로 닿을 수 있는. 헌데도 우리는 이런 행복을 이런 평화를 행복으로 평화로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시인은 아래처럼 덧붙였겠지요.
“영원했으면… 하지만 / 지나가는 조용한 날들 / 조용한… 날들…”
화자는 물론 우리 모두 ‘조용한 날들(행복과 평화가 가득찬 날들)’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허나 조용히 지나가는 날들보다 조용하지 않은 날이 더 많습니다. 우리 사회만 아니라 전 세계 지구촌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말줄임표(…)’와 ‘하지만’이란 시어를 통해 조용한 날들이 오래 머물지 않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영원했으면…’ 하는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말줄임표 사이사이에 지금 이 순간에도 사건 사고들이 수없이 일어나니까요.
시인은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에 숨어 있는 행복과 평화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시를 썼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