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6편 : 김춘기 시인의 '주말 특집뉴스'
@. 오늘은 김춘기 시조시인의 시조를 배달합니다.
주말 특집뉴스
김춘기
심야
국도 불빛 향해
기어오르는 개구리울음
약 냄새 등에 지고
물돌 건너 늪 쪽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길 없는 피난 행렬
귀가 되어 듣고 있다
선잠 깬 내 온몸은
경적에 밀려가는
숨 막히는 발자국소리
어쩌나 꼬리치레도롱뇽
아장걸음 어쩔거나...
맹꽁이 두꺼비 가족도
서둘러 봇짐 쌌네
마른번개 우레에
둠벙 혼자 안절부절
집 잃은 북방산개구리
어디에서 무얼 할까
- [웃음발전소](2020년)
#. 김춘기 시조시인(1954년생) :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경기도에서 교편 잡다가 명퇴 후 현재 제주도로 내려가 생활하는데 시인인 아내 김영옥과 함께 [윗세오름 까마귀]란 부부시집을 펴냄.
(동명이인으로 돌아가신 경남 고성 출신의 김춘기 시조시인도 계심)
<함께 나누기>
오늘 시가 시조인가 하고 고개 갸우뚱하실 분들을 위하여 4음보 형태의 고시조 율격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좀 까다로워 보이는 1연 초장만 바꿔보겠습니다.
“심야 국도 / 불빛 향해 / 기어오르는 / 개구리울음”
현대시조는 고시조의 정형 율격을 깨뜨려서 시조인가 아닌가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시와 구별이 거의 되지 않습니다. 오늘 작품도 마찬가집니다. 개구리, 꼬리치레도룡뇽, 맹꽁이, 두꺼비, 북방산개구리 등이 주인공이 되고 작자인 화자는 관찰자로 나옵니다.
“심야 / 국도 불빛 향해/ 기어오르는 개구리울음 / 약 냄새 등에 지고 / 물돌 건너 늪 쪽으로 / 꼬리에 꼬리를 무는 / 길 없는 피난 행렬”
개구리가 피난을 떠납니다. 까닭은 ‘약 냄새’에 있습니다. 개구리가 사는 곳은 주로 물이 가득 찬 논입니다. 개구리는 거기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며 단란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보금자리를 빼앗았습니다.
벼를 키우기 위해서는 농약을 칠 수밖에 없고, 농약을 맡으면 개구리는 올챙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선가요, 농약 덜 치는 산골의 논에 유독 개구리가 많이 산다는 사실을. 거기서 개구리는 더욱 요란히 울고.
“귀가 되어 듣고 있다 / 선잠 깬 내 온몸은 / 경적에 밀려가는 / 숨 막히는 발자국소리 / 어쩌나 꼬리치레도롱뇽 / 아장걸음 어쩔거나...”
화자 귀에 발자국소리가 들립니다. 이 발자국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개구리가 걸어가는 소리입니다. 그럼 들릴 리 없겠지요. 허나 시인의 귀는 소머즈의 능력을 가진 터라 피난길 떠나는 개구리 발자국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개구리만 떠나는 줄 알았는데 꼬리치레도롱뇽도 피난길 떠납니다. 꼬리~~는 우리나라 남쪽의 높고 깊은 산간 계곡에 서식합니다. 이들은 농약에 이어 자동차 경적 때문에 살 수 없어 떠납니다. 이러고 보면 야생의 것들이 살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맹꽁이 두꺼비 가족도 / 서둘러 봇짐 쌌네 / 마른번개 우레에 / 둠벙 혼자 안절부절 / 집 잃은 북방산개구리 / 어디에서 무얼 할까”
개구리와 꼬리치레도롱뇽에 이어 맹꽁이 두꺼비도 봇짐 싸고 피난길에 나섭니다. 동료들이 피난길 나설 때 함께 따라나서지 못한 북방산개구리만 남아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조를 읽으면 처음엔 잘 이해 안 되다가 한 번 더 읽으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웬만하면 한 곳에 뿌리박으며 살던 파충류들이 살 곳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어디 농약 치지 않고 자동차 경적 울리지 않는 곳이 있던가요?
아마 동물들이 말을 한다면 마을 회관이나 광화문 광장에 집회를 열어 이렇게 외치겠지요.
“제발 우리를 살게 해 다오, 이 나쁜 인간들아!”
시인의 귀에만 이런 말이 들릴까요? 오늘 시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