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7편 : 윤효 시인의 '못'
@. 오늘은 윤효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못
윤효
가슴 굵은 못을 박고 사는 사람들이 생애가 저물어가도록 그 못을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거기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 [물결](2001년)
#. 윤효 시인(1956년생, 본명은 ‘창식’) :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8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서울 오산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했으며, ‘짧은 시 쓰기’ 운동가며 실천가로 불림
<함께 나누기>
요즘 시는 대체로 깁니다. 그래선지 이렇게 짧으면서도 강하게 ‘확’ 하고 가슴에 안기는 시가 참 좋습니다. 시인 소개에서 '짧은 시 쓰기 운동 실천가'라고 했는데 오늘 시도 거기에 해당합니다. 짧지만 깊이가 만만찮은 시.
모르는 사람들은 긴 시보다 짧은 시 쓰기가 쉽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데 사실 더 어렵답니다. 시가 압축의 장르인데 그걸 다시 압축해야 하니 쉬울 리 없겠지요. 이런 촌철살인의 시가 그래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가슴에 못 하나 박아놓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갑질당한 울분의 못에서부터, 부모에게 비수처럼 박은 불효의 못, 자식에게 수도 없이 박은 강요의 못, 아는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들이민 못... 게다가 스스로의 가슴에 망치질한 자승자박의 못까지.
내 가슴에 박히고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적 많은 저는 이 짧은 시를 읽는 순간 갑자기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에 걸린 못이 너무 많아서 그랬습니다. 굳이 박아야 했다면 잔못만 박았어도 될 걸 대못을 박아서도 그렇고, 그 못이 할퀸 상처 기억 못해 더욱 그렇습니다.
어릴 때 워낙 호랑이 같은 아버지께 무조건 순종해야 했지만 대가리가 커지면서 대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평소 남들에게 잘해주다가도 꼭 한 번씩 모진 말로 상대에게 못을 박았습니다.
저는 절대로 아버지 닮지 않겠다고 맹세했건만 돌아보면 어느새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딸아들에게, 제자들에게, 그리고 아는 만만한 이들에게. 그렇게 못을 박으면서 그게 잘못인 줄 몰랐습니다. 할 말을 했다고 여겼습니다.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에 박힌 못. 이걸 상처로 여기기보단 훈장으로 여기며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영원히 아물지 못하도록 만든 상처, 그 아픔과 그 외로움과 그 '싸한' 맛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함이 자꾸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삶이 물같이 바람같이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순리적으로 흘러간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지만 우리는 자연을 찾으면서도 자연이 아니라, 제 ‘가슴에 굵은 못’을 하나씩 박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으며 한 번쯤 생애 가장 뜨거웠던 부분이 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함께 읽으시는 분들도 아마 저처럼 떠올릴지 모르겠습니다. 못 하나 걸지 못하도록 뜨뜻미지근하게 살지만 않았다면...
시인의 짧은 시 한 편 더 붙입니다.
- 함박눈 -
눈이 내립니다.
남의 손에 넘어간 논배미에
저물도록 펑펑 내려 쌓이고 있습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 [배꼽](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