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8편 : 이종문 시조시인의 '효자가 될라카머'
@. 오늘은 이종문 시조시인의 시조를 배달합니다.
효자가 될라카머
- 김선굉 시인의 말 -
이종문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 [정말 꿈틀, 하지 뭐니](천년의시작, 2010)
#. 이종문 시인(1955년생) : 경북 영천 출신으로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임했는데, 특히 능청스러운 반전과 해학과 풍자로 쓴 시조가 읽는 맛을 준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이종문 시인의 시조는 읽는 맛을 줍니다. 시조가 읽는 맛을 준다면 보통 운율이 정격이라 읽기 쉽다는 뜻이겠지만, 제 말은 내용이 아주 재미있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시를 쓰는 시인으로는 돌아가신 ‘오탁번’ 교수, 재미있는 시조를 쓰는 시인으론 ‘이종문’ 교수. 저는 늘 이렇게 소개합니다. 오늘 시조도 그렇습니다. 부제에 나오는 김선굉 시인과 형 아우로 지내면서 서로 주고받는 얘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우선 오늘 시가 누가 보든 2연으로 된 시조임은 드러나지요. 고시조 율격에도 딱 맞는 2연으로 된 평시조 형태니까요. 내용은 젊은 사람이라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중씰한 나이에 이른 분이라면 읽으면서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질 겁니다.
이 시조는 저도 8년 전에 한 번 배달했고, 이미 여러 사이트에 돌고 있는지라 읽어보신 분이 꽤 될 겁니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시작부터 경상도 사투리의 구수함이 물씬 풍겨옵니다. 요즘은 사투리 대신 ‘탯말’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고, ‘입말’이라고도 합니다. ‘글말’이 글로서 감정을 표현하는데 쓰는 말이라면 ‘입말’은 말 그대로 현실에서 입으로 주고받는 말을 글로 옮기는데 쓰는 말입니다.
효자가 되는 비법을 선배인 김선굉 시인이 후배인 이종문 시인에게 전수하는(?)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다만 효자가 되는 비법으로 옳은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실실 삐져나오는 웃음만은 막을 수 없습니다.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짜 안아뿌라 /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사람이 사람을 안는다는 건 가장 확실한 ‘사랑한다’를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서로의 몸이 부딛히면서 사랑을 확인함이 ‘안는다’니까요. ‘안는다’에서 나아가 ‘젖 만져뿌라’, 이러면 중씰한 나이에게나 통하지 제 아들이 엄마 젖을 만지려 들어도 아마 아내가 기겁할 겁니다.
문득 생각납니다. 어릴 때 사촌형이 우리 집에 얹혀 살았는데 가끔 술 한 잔 마시면 울엄마 젖을 만지려 들었습니다. 그때 어린 저로선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만 나중에사 사촌형이 나자마자 큰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한 번도 자기 엄마 젖을 만지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지금은 이렇게 할 자식 없을 겁니다. 어떤 어머니든 화들짝 놀라 피하거나 아주 맵차게 ‘등짝스매싱’을 날릴 테니까요. 허나 엄마의 가슴이 아무리 쭈글쭈글해지더라도 아들에게는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라고 하더군요.
“다 큰 기 와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오늘 시를 만약 표준어로, 그리고 점잖음을 곁들여 표현했다면 이 시조는 맛깔스런 시조가 되었을까요? “아니 너처럼 다 큰 애가 이런 짓 하면 안 되지.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거야. 그래도 정 어머니의 정이 그립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위처럼 썼다면 읽고 싶은 맛이 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사투리의 쓰임은 영원해야 합니다. 비록 표준어를 방송 뉴스에서는 사용할지라도. 가끔 예전 수업시간에 일부러 사투리를 써가며 설명하면 확실히 학습 집중도가 높아졌습니다. 애들도 사투리가 재미있던가 봅니다. 마치 외계어처럼.
오늘 시조를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쓰도 좋은 작품이 된다고 하면 나도 쓰겠다’라고 하실 분 계시다면 꼭 한 번 도전해 보시길. 그리고 댓글로 남겨두시길. 각 지역방언(사투리)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심성과 삶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에 쓰인 말처럼 참 따스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