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3편 : 이영광 시인의 '비누에 대하여'
@. 오늘은 이영광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비누에 대하여
이영광
비누칠을 하다 보면
함부로 움켜쥐고 으스러뜨릴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누는 조그맣고 부드러워
한 손에 잡히지만
아귀힘을 빠져나가면서
부서지지 않으면서
더러워진 나의 몸을 씻어준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한다
힘을 주면 더욱 미끄러워져
나를 벗어나는 그대
나는 그대를 움켜쥐려 했고
그대는 조심조심 나를 벗어났지
그대 잃은 슬픔 깨닫지 못하도록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지
끝내 으스러지지 않고
천천히 닳아 없어지는 비누처럼 강인하게
한 번도 나의 소유가 된 적 없는데
내 곁에 늘 있는 그대
나를 깊이 사랑해주는
미끌미끌한 그대
- [직선 위에서 떨다](2003년)
#. 이영광 시인(1965년생) : 경북 의성 출신으로, 1998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현재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함께 나누기>
머리 감을 때 샴푸와 린스를 안 쓴지 오래요, 샤워할 때도 바디워시인지 뭔지 하는 제품 역시 쓰지 않습니다. 세수하고, 머리 감고, 목욕할 때 오직 비누 한 가지만 사용합니다. 그게 조금이나마 환경을 보호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바꾸는 게 귀찮아서...
헌데 비누 사용할 때마다 아쉬움은 미끌미끌하여 손에서 빠져나가 자주 떨어뜨린다는 점입니다. 특히 세게 쥐면 쥘수록 아귀힘을 따돌리며 빠져나갑니다. 언젠가 아나구 낚시 가서 끌어올리긴 했는데 바늘 빼려다 미끌어져 놓친 것처럼.
저는 고작 손에서 빠져나가는 비누의 미끌미끌함에 짜증낼 뿐이건만 시인의 눈은 역시 다릅니다. 비누를 '헤어진 연인'에 비유하는 저 기발함! 저 참신함! 그래서 산문 쓰는 저같은 사람은 시를 읽어야 하나 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비누는 조그맣고 부드러워 / 한 손에 잡히지만 / 아귀힘을 빠져나가면서 / 부서지지 않으면서 / 더러워진 나의 몸을 씻어준다"
한 손에 담겨 힘만 조금 줘도 단번에 으스러질 것만 같은 연하디 연한 비누, 허나 어느새 빠져나갑니다. 더구나 힘을 세게 주면 줄수록 쉬 미끄러집니다. 그 조그맣고 부드러운 비누는, 허나 더러워진 나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나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나를 일깨워줍니다.
"힘을 주면 더욱 미끄러워져 / 나를 벗어나는 그대 / 나는 그대를 움켜쥐려 했고 / 그대는 조심조심 나를 벗어났지"
비누만 손을 벗어나려는 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에 소유하러(움켜쥐러) 합니다. 그게 진짜 사랑이라 믿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괜한 집착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집착을 버림이 소유에 더 접근할 수 있음을 몰랐던 거지요.
"한 번도 나의 소유가 된 적 없는데 / 내 곁에 늘 있는 그대 / 나를 깊이 사랑해주는 / 미끌미끌한 그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으스러질까 봐 소중히 다루어야 할 품목을. 어디 비누뿐이겠습니까 내 손아귀로 거머쥐고도 내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수많은 존재들. 품어야 했건만 옭아매려 했으니. 그대는 물 묻은 비누처럼 미끌미끌 잘도 빠져나갑니다. 특히 꽉 쥐려면 쥐려 할수록 멀리 달아나버립니다. 진짜 아끼는 존재는 손아귀에 넣으려 하지 말고 조금 떨어진 채로 놔두는 게 현명할진저.
오늘 '한 번도 나의 소유가 된 적 없는데 내 곁에 늘 있어주는' 비누 같은 다른 존재를 찾는 유익한 시간 만들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