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2편 : 김윤현 시인의 '채송화'
@. 오늘은 김윤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토끼풀
김윤현
삶이란 원래
자잘한 걸
삶이란 처음부터
일상적인 걸
촉촉한 손을 내밀어
꼭 잡아주면
이렇게 행복인 걸
세 잎이면 어떻고
네 잎이면 어떠리
바람이 불면
같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 끝에 오는 슬픔도
같이하면서 함께 일어선다
옹기종기
- [들꽃을 엿듣다](2007년)
#. 김윤현 시인(1955년생) : 경북 의성 출신으로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하면서 등단. [들꽃을 엿듣다]란 시집을 펴내면서 ‘들꽃에 관한 관찰력’에서 있어서는 따라갈 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음.
<함께 나누기>
텃밭을 가꾸다 보면 거길 침범하는 녀석들을 많이 봅니다. 민들레, 엉겅퀴, 명아주, 쇠뜨기, 바랭이, 게다가 칡넝쿨까지. 그런데 뭣보다 귀찮은 녀석이 바로 잔디입니다. 특히 우리 집 텃밭은 잔디밭과 붙어 있다 보니 거기로 자주 뿌리를 뻗어 보는 족족 뽑아내야 합니다.
언젠가 모 서원을 찾아갔을 때의 일입니다. 거기 잔디밭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잔디는 보이지 않고 토끼풀만 가득했으니까요. 그곳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처음 토끼풀이 조금 나기에 그냥 뒀더니 얼마 안 돼 잔디를 몰아내고 저들이 자리 차지했다는 겁니다.
이 시는 잔디를 쫓아낼 정도로 강인한 토끼풀의 생명력을 얘기하는 대신 토끼풀이 제 키에 딱 맞게 자잘한 삶과 행복 추구하는 모습을 우리네 삶에 대입시키고 있습니다.
“삶이란 원래 / 자잘한 걸 / 삶이란 처음부터 / 일상적인 걸”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자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꿈을, 희망을, 미래를 얘기할 때 크고 높고 거룩한 무엇인가를 내세웁니다. 그 속에서 삶의 의미가 있을 거라 여기니까요. 헌데 시인은 삶은 원래 아주 자잘하며 큰 의미 없는 일상에서 온다고 단언합니다.
“촉촉한 손을 내밀어 / 꼭 잡아주면 / 이렇게 행복인 걸”
높은 자리로 승진하거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하거나, 넓은 아파트로의 이사 같은 거창한 일을 행복으로 여기지만, 손주 재롱에 함박웃음 터뜨리거나, 마음 맞는 벗이랑 술(차) 마시거나, 이른 봄 따뜻한 날 봄까치꽃 얼굴 내밂을 봄도 작은 행복입니다.
제가 참 행복하다고 여기는 순간은 비가 내리다 잠시 개면 안개가 스멀스멀 달내계곡을 타고 올라올 때입니다. 그 안개가 반장댁을 감싸 안다가 건국어르신댁, 율어아주머니댁, 가음할머니댁을 거쳐 우리 집에 이르러 사그라들 때, 그때 손에 찻잔 들고 있다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사는 아는 이가 어느 가을 아침, 유리창에 비치는 햇살이 너무 고와 저도 모르게 얼굴 대고 울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물결이 너무나 아름다워서였다나요.
“그 흔들림 끝에 오는 슬픔도 / 같이하면서 함께 일어선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살고 싶지만 그 흔들림마저 껴안는 마음, 그 슬픔마저 받아들이려 할 때 또 다른 자잘한 삶은 시작됩니다. 오르막길엔 내리막을 생각하면 힘이 덜 들고, 내리막길엔 오르막 떠올리며 대비를 합니다. 언제나 평탄한 길만 갈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삶에서 깊은 의미를 찾으려 할 때 우린 힘들어집니다. 갈등과 번뇌가 생겨납니다. 큰 것을 바라고 거기에 매달리다 보면 얻음보다 잃음이 더 큽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자리에 마주한 사람과 일상적인 얘기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게 바로 삶이라고 여긴다면 바로 그게 행복 아닐까요.
오늘 평범한 글 한 줄에, 차 안에서 언뜻언뜻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길가에 피어난 꽃에,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면 소소한 삶에서 행복을 얻지 않을까요. 내가 손 내밂만으로도 가질 수 있는 것들, 그것만으로도 지금 나는 무척 행복하다고 여기며 하루를 열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