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3편 : 홍영철 시인의 '저무는 빛'
@. 오늘은 홍영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저무는 빛
홍영철
누가 당기고 있나
해가 기울고 있다
누가 떠밀고 있나
해가 떨어지고 있다
당기지 마라
떠밀지 마라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우리가 언제
기울지 않았던 적이 있더냐
-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12년)
#. 홍영철 시인(1955년생) : 대구 출신으로 1978년 [매일신문]과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문학사상] 편집부에 근무하는 등 신문·잡지·방송·출판 일을 하면서 시·노래·연극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힘. (동명이인으로 복싱선수 출신의 시인도 있음)
<함께 나누기>
예전 한때 학교에 돌았던 우스개 하나 전합니다.
어느 중학교에 장학사가 시찰을 나왔다. 장학사가 학급에 들어가서 미화 상태를 점검하던 중 교탁 옆에 놓인 지구본을 봤다. 앞에 앉은 한 학생을 지목하며
장학사 : 학생, 이 지구본이 왜 기울어져 있지?
학생 : (당황하며) 제가 안 만졌는데요!
장학사는 기가 막혀 담임교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담임교사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그거 사올 때부터 그런 것 같던데요.”
그러자 옆에 있던 교장선생님 역시 얼굴이 빨개지며 담임교사의 말을 거들었다.
“국산이 다 그렇죠. 뭐!”
시로 들어갑니다.
“누가 당기고 있나 / 해가 기울고 있다 / 누가 떠밀고 있나 / 해가 떨어지고 있다”
우리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 때문에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배웠습니다. 오늘 시에선 시인의 상상력이 슬쩍 가미됩니다. 그러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현상이 보이는가... 시인의 눈과 귀가 예사롭지 않음을 또 확인합니다.
해는 저절로 기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해를 아래로 잡아당기기 때문에 기울고, 해는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떠밀기 때문에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당기지 마라 / 떠밀지 마라”
가만히 놔두면 기울지도 떨어지지도 않을진대 자꾸만 당기고 떠미니까 기울어집니다. (실제론 어차피 해가 뜨거나 해가 지겠지만) 이 두 시행에서 화자의 외침 ‘~~ 마라’는 명령형이 아니라 간절함을 지닌 호소형입니다. 즉 ‘제발 당기지 마세요, 떠밀지 마세요.’ 하는.
우리네 서민의 삶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꼿꼿이 서 있지 못하고 한쪽으로 쑤욱 기웁니다. 가만히 있어도 기우는데, 아래로 끌어당기고 뒤에서 떠미니까 더 기울 수밖에요. 어쩌면 삶의 고달픔이 여기 있는지 모릅니다.
이 시의 절창(絶唱)은 바로 마지막 시구입니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 우리가 언제 / 기울지 않았던 적이 있더냐”
그리 길지 않은 시구지만 많은 의미를 담았습니다. 해(천체)의 기움에 대한 관점이 돌연 사람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우리네 삶이 퍽퍽한 건 스스로 만들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가 끼어들어 힘들게 만들 때가 더 많습니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요?
가만히 놔둬도 언젠가는 저물 수밖에 없는 삶의 길을 누군가, 그게 사람이든 운명이든 제 복이든 자꾸 막습니다. ‘제발 날 내버려둬. 네가 뭔데 나를 휘저어 놓니?’ 하는 소리가 나오게끔 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울기와 떠밀림이 더 빨라집니다. 버팀목이라도 있으면 그걸로 늦춰보련만 내가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당기고 떠미는 세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살기가 더 팍팍해졌다는 말입니다. 버팀목이 곁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종교든 친구든 좋아하는 다른 무엇이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