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94)

제394편 : 이시훈 시인의 '늑대 잡는 법'

@. 오늘은 이시훈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늑대 잡는 법
이시훈

에스키모인들이 늑대 잡는 법 : 피 묻은 칼날 위에 얼음을 얼려 세워둔다.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얼음을 핥아낸다. 이내 날카로운 칼날이 드러나지만 이미 감각이 둔해진 혀는 핥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칼날에선 자신의 피가 흐르고, 피의 향에 길들은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피인 줄도 모르고 끝장을 볼 때까지 핥다가 너덜너덜 찢어진 혀를 빼어 문 채 눈밭을 붉게 물들이며 늑대는 죽어간다.
아름다운 사과의 속살에 박힌 독, 달콤한 사탕 안에 녹아있는 치명적인 독. 죄짓는 일은 언제나 감미로워 목숨을 걸 만큼이다.
- 내 안에 늑대가 있다.
<시집 [누드를 그리다](2002년)>

#. 이시훈(1959년생) : 서울 출신으로 2000년 계간 [다층]을 통해 등단. 현직 약사로 약국을 경영하며, 혹 이름만으로 남자로 오해할지 모르나 '여성시인'임. 특히 동덕여대 약학과 동기인 현직 약사 류효선과 [꽃에 대한 시선]이란 시화집을 펴내면서 뉴스를 탐.




<함께 나누기>

아는 이로부터 이 시를 소개받고 읽어보았습니다. 낯선 시인이고 낯선 시라 여겼는데, ‘에스키모의 늑대 사냥법’이란 제목의 수필은 언젠가 읽어보았습니다.
시 1행은 시인이 독창적으로 만든 내용이 아니라 1960년대 한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주변에 떠도는 얘기리 모아 들려주는 시간에 언급된 일화며, 우리나라에선 개신교 목사들 사이에 그 내용이 알려지면서 강론 시간에 많이 활용됐답니다.

그런데 한낱 옛 얘기에 불과한 글이 시로 다듬으면서 새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제법 긴 이야기를 1행에서 간략하게 정리하여 깔끔하게 처리한 데다, 특히 2행과 3행이 더해지면서 새로움을 주는 창의적인 작품이 되었기에.
에스키모(‘에스키모인’은 잘못된 표현임)가 실제로 늑대를 사냥할 때 1행처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겠지요. 중요한 건 그 속에 담긴 메시지일 겁니다.

“이내 날카로운 칼날이 드러나지만 이미 감각이 둔해진 혀는 핥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보통 우리가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때 처음에는 경계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에 편해졌다 싶을 즈음엔 악의 불길에 휩싸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 하나는 일을 함에 있어 나타와 타성에 젖어 새로운 시도를 꺼리게 되고, 변화 없는 방식대로 이어가다가 망하기 직전에야 ‘아차!’ 하게 됩니다.

“자신의 피인 줄도 모르고 끝장을 볼 때까지 핥다가 너덜너덜 찢어진 혀를 빼어 문 채 눈밭을 붉게 물들이며 늑대는 죽어간다.”

피 묻은 칼날은 무섭습니다. 이는 섬뜩할 정도로 무섭습니다.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에야 그 위험성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술ㆍ담배, 도박, 마약에 닿기 전에는 경계의 대상이었건만 한 번 두 번 거듭되면서 중독이 됩니다. 요즘은 SNS 중독이 사회문제로까지 번져 큰 파장을 일으켰고...

“아름다운 사과의 속살에 박힌 독, 달콤한 사탕 안에 녹아있는 치명적인 독. 죄짓는 일은 언제나 감미로워 목숨을 걸 만큼이다.”

동화 [백설공주]에서 공주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죽음에 빠뜨린 건 독이 든 사과였지요. 그 사과가 먹음직스럽지 않았다면 백설공주는 절대로 먹지 않았을 겁니다만. 어떤 유혹이든 거기에 빠지도록 달콤한 미끼가 놓입니다. 죄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괜찮겠지’ 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발이 푹 담깁니다. 한 번 담근 발을 쉬 빼낼 수도 없고.

“- 내 안에 늑대가 있다.”

내 안에 늑대가 살고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눈만 뜨면 세상은 온통 독 묻은 사과의 전시장이니까요. ‘복어가 맛있음은 독이 있기 때문’이란 말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독이 ‘치명적’이며 ‘끝장을 낸다’라는 점이지만.
그럼에도 내 안의 늑대는 거리의 쓰레기통마다 뒤지는 길냥이처럼 오늘도 독 묻은 사과를 찾아다닙니다. 내 안에 유혹에 길들여진 늑대가 살고 있음을 명심합시다. 특히 ‘피 묻은 칼’을 핥아먹지 않도록 말입니다.

#. ‘에스키모 늑대 사냥법’이란 동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cORURn2DEY


에스키모가 늑대를 잡는 방법

지영균 감독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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