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00)

제400편 : 윤재철 시인의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 오늘은 윤재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윤재철

바퀴는 몰라
지금 산수유가 피었는지
북쪽 산기슭 진달래가 피었는지
뒤울안 회나무 가지
휘파람새가 울다 가는지
바퀴는 몰라 저 들판
노란 꾀꼬리가 왜 급히 날아가는지

바퀴는 모른다네
내가 우는지 마는지
누구를 어떻게
그리워하는지 마는지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고독한지
바퀴는 모른다네

바퀴는 몰라
하루 일 마치고 해질녘
막걸리 한 잔에 붉게 취해
돌아오는 원둑길 풀밭
다 먹은 점심 도시락 가방 베개 하여
시인도 눕고 선생도 눕고 추장도 누워

노을 지는 하늘에 검붉게 물든 새털구름
먼 허공에 눈길 던지며
입에는 삘기 하나 뽑아 물었을까
빙글빙글 토끼풀 하나 돌리고 있을까
하루해가 지는 저수지 길을
바퀴는 몰라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너무 오래 달려오지 않았나
- [거꾸로 가자](2012년)

#. 윤재철 시인(1953년생) :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82년 동인지 [오월시]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성동고 재직 시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된 뒤 [실천문학사]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실천문학] 복간에 애썼으며, 복직 후 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함께 나누기>

저는 시를 읽을 때면 꼭 세 번은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물론 한 번만 읽어도 쉽게 이해되는 시가 제법 됩니다. 이 시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그래도 세 번 읽으면 한 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보다 느낌이 조금씩 달라질 겁니다.
이 시와 관련된 두 가지 인터넷 기사를 가지고 접근하렵니다. 하나는 제가 차에 관심이 많다 보니 차 관련 뉴스, 특히 신차 시승기가 나오면 꼭 한 번 훑어봅니다.

얼마 전 모 자동차 시승기 속의 내용 일부입니다.
“속도계가 최고 300km/h까지 올라오는 데는 5초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 기사를 보며 우리나라 도시 한 복판에서 순간 속도를 저렇게 고속으로 올릴 기회를 폐차되기 전까지 단 한 번이라도 가질 수 있을까? 또한 시속 300km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이 독일 아우토반이라면 몰라도 우리나라 어느 고속도로에서 가능할까?

이와 대조되는 다른 기사입니다.

“얼마 전부터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느림의 미학(美學)에 대한 열풍에서 슬로비족이 등장한다.
슬로비족이란,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약칭으로 느림과 여유가 필요한 현대인들이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느림은 게으름과 나태를 뜻하는 단어로 굳어진 지 오래입니다. 조금만 늑장 부려도 '너는 안 돼!'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시는 바로 그런 세상에 똥침을 놓습니다. ‘쉬지 않고 일만 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삶은 매우 위험하다.’ 하고.

시에서처럼 산수유와 진달래가 피고 지는지, 뒤울(뒤꼍의 충청도 사투리) 안 회나무 가지에 휘파람새가 울다 가는지, 노란 꾀꼬리가 왜 급히 날아가는지, 내가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또 얼마나 고독한지를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하루 일 마치고 막걸리 한 잔에 붉게 취해 돌아오는 원둑길 풀밭에서 다 먹은 점심 도시락 가방 베개 하여 누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화자는 충고합니다.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 너무 오래 달려오지 않았나”

내 몸은 그동안 충분히 오랫동안 달려왔으니 이젠 쉬라고 하는데, 마음은 무엇에 쫓기는지 브레이크 다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아직 벌어야 할 돈이 많이 남았다고, 얻어야 할 명예가 더 있다고, 남들 위에 올라서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세상을 그렇게 밀어붙입니다.
그 사이에 내게 달린 두 바퀴는 다 부서져가고, 진짜 자동차처럼 새 바퀴를 갈아 끼울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브레이크 없는 바퀴가 되어 오늘도 방향 없이 질주하고 있습니다. 브레이크, 브레이크를 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잠시 멈춰 서서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다가, 때론 발아래도 내려다보면 어떨까요? 필시 제대로 볼 수 없던 걸 보게 될 겁니다.


오늘만이라도 제 발에 당장 브레이크를 달고 느릿느릿 걷고 싶습니다.



*. 사진은 모두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나온 스틸 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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