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9편 : 장철문 시인의 '신혼'
@. 오늘은 장철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신혼
장철문
아내의 몸에 대한 신비가 사라지면서
그 몸의 내력이 오히려 애틋하다
그녀의 뒤척임과 치마 스적임과
그릇 부시는 소리가
먼 생을 스치는 것 같다
얼굴과 가슴과 허벅지께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오래전에
내 가슴께를 스적인 것이 만져진다
그녀의 도두룩하게 파인
속살 주름에는
사람의 딸로 살아온 내력이 슬프다
우리가 같이 살자고 한 것이
언젠가
- [산벚나무의 저녁](2003년)
#. 장철문(1966년생) : 전북 장수 출신으로 1994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현재 순천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특히 아동문학 전공이라 동시도 쓰는 덕분인지 쉬우면서도 생각의 깊이를 담은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부부가 된다는 건,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 한 몸을 이룬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81억 인구 가운데 누군가와 만나서 맺어진다는 건, 단순히 인연이란 말로 마무리하기엔 더 큰 끌어당김이 있었을 겁니다.
졸혼(卒婚)이란 말이 더 다가오는 나이임에도 괜히 '신혼'이란 제목에 이끌림은 그 시절 풋풋했던 아내의 모습을 찾기 위함일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아내의 몸에 대한 신비가 사라지면서 / 그 몸의 내력이 오히려 애틋하다”
신혼 초엔 아내 몸을 보려고 하나 어둠 속이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불을 켜면 이번엔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 몸을 보려고 하면 볼 수 있건만 이번엔 내가 피합니다, 애틋함에서.
축 처진 가슴, 나올 대로 나온 똥배, 탄력 잃은 피부, 화장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만든 원흉이 세월이 아니라 바로 '나'라고 깨닫는 순간 그 애틋함은 배로 불어납니다. 마치 화장의 두께가 불어나듯이.
“그녀의 뒤척임과 치마 스적임과 / 그릇 부시는 소리가 / 먼 생을 스치는 것 같다”
요즘 만나는 벗이나 모임 회원에게 부부끼리 딴방 쓰며 산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자기 아내는 낮은 온도를 좋아하나 자기는 높은 온돌 좋아해서 그렇다는 남정네나, 남편이 잘 때 코 골거나 이빨 가는 소리가 너무 싫어서 같이 자기 싫다는 여인네도 있고... 그렇게 가까웠던 부부가 조금씩 거리를 둡니다. 팔베개 안 하면 잘 수 없다고 했던 그 부부가 ‘몸 부대끼는 게 싫어서’로 바뀝니다.
“그녀의 도두룩하게 파인 / 속살 주름에는 / 사람의 딸로 살아온 내력이 슬프다”
언젠가 하도 아내의 치과 진료 비용이 많이 들어 형 아우 하며 지내는 치과의사에게 투정했더니,
“형님, 형수님이 처녀 때는 멀쩡했잖아요. 그동안 애 둘 낳고, 형님 술 취해 늦게 들어올 때마다 걱정하고, 또 형님이 병원 신세 질 때마다 시나브로 마음에 상처 입어 그리된 겁니다." 하는 말에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사람의 딸로 살아온 내력'은 아내의 몸에 새겨진 주름과 흔적을 통해 딸로서 아내로서 살아온 인생 무게와 슬픔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모든 아내 몸에는 사람의 딸로 지내온 처절한 삶의 상처가 낙인처럼 찍혀 있을 겁니다.
“우리가 같이 살자고 한 것이 / 언젠가”
결혼식에서 서약할 때 분명히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변함없자고 했건만 살다 보니 아내의 흠집이, 남편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옵니다. 결혼이 단순히 여자와 남자 만남을 뛰어넘어 한 세상, 더 나아가 한 우주를 만드는 일이라고 현인들이 말했건만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끝으로 문태준 시인의 멋진 말을 인용합니다.
“연민이야말로 부부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포옹이다.”
*. 오늘 시에 어울리는 노래 하나 덧붙입니다.
https://youtu.be/VkW2N-blZcc
김광석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인생의 늘그막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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