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8편 : 이사라 시인의 '뭉클'
@. 오늘은 이사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뭉클
이사라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희로애락
가슴을 버린 지 오래인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사랑이 폭우에 젖어
불어터지게 살아온
네가
나에게 오기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눈물이 가슴보다
먼저 북받친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네 뒷모습을 보면서
왜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
끝내
가슴속이어야 하나
-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2018년)
#. 이사라 시인(1953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81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서울과기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한 뒤 현재 명예교수로 계심.
<함께 나누기>
나이 들면 웃음보다 눈물이 는다고 합니다. 드라마 보거나 남 이야기 듣거나 눈가에 이슬 젖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기뻐할 일보다 슬퍼할 일이 많아지면서 눈물도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다 그렇거니 하며 슬픔을 털어내며 견뎌 보려는 자세로 시를 읽어봅니다.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참 멋진 묘사입니다. 평범한 우리는 그냥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게 할 걸 '저녁이 쉽게 오고 시력이 흐려지는 사람'으로 표현했으니까요.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아침이 더 중요하지만 나이 든 사람에겐 저녁이 더 소중합니다. 시작보다는 마무리가 더 필요하기에.
"희로애락 / 가슴을 버린 지 오래인 / 사람에게 /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나이 들면 '喜怒哀樂' 넉 자 대신 '哀哀哀哀'만 찾게 된답니다. 아 물론 나이 들어도 기쁨과 즐거움이 더 는 사람도 있겠지만. 슬플 '哀'만 찾다 보면 부정적 기분만 치솟을 텐데 대신 가슴 뭉클함을 더 느끼지요. 젊었을 때 받지 못했던 일에 새로 감동 느끼듯이.
"사랑이 폭우에 젖어 / 불어터지게 살아온 / 네가 / 나에게 오기까지 /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사랑을 '폭우'에 비유함은 그동안 그대와 내가 사랑하면서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는 말이지요. 그대와의 사랑이 이뤄지기까지 단 한순간도 평탄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뭉클함이 더 치솟아 애틋한 감정이 지속되는 것일지도.
"눈물이 가슴보다 / 먼저 북받친 날이 얼마나 / 많았을까"
가슴으로 느껴지는 애틋함에 그냥 눈물부터 쏟아집니다. 그대를, 그대의 사랑을 생각하는 순간 뭉클 치미는 그 무엇 때문에. 언제 단 하루도 그대 생각 않고 지낸 적 있을까요. 그래서 어떤 시인은 '몹쓸 짓'이란 제목의 시에서 '그대 생각 않고 하루를 보냈다'라고 했는지도.
"네 뒷모습을 보면서 / 왜 뭉클은 /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 / 끝내 / 가슴속이어야 하나"
그렇게나 사랑했건만 그대는 내게 뒷모습만 보여주면서 쓸쓸히 멀어져 갔습니다. 그건 뭉클함이 아니지요.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뭉클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은 억누를 수 없이 커집니다.
허나 뭉클한 마음을 드러나지 않고, 마음속 깊이 묻혀야만 합니다. 그게 그리움을 연장하는 방법임을 잘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