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06)

제406편 : 장남숙 시조시인의 '마네킹을 보다'

@. 오늘은 장남숙 시조시인의 시조를 배달합니다.


마네킹을 보다
장남숙

한 번도 제 옷을 입어본 적 없었다
얼기설기 시침핀 허리춤을 찌르고
온종일 부동자세로 눈을 뜬 채 꿈꾼다

당겨온 계절 따라 거짓 웃음 흘리고
핏기 없는 그녀가 유리벽에 마주 선다
후다닥 갈아입은 옷 정가표가 도도하다

관절이 삐걱댈 대 쉼표 하나 생길까
레이스 자락 속에 시린 속내 매달았나
무표정 데칼코마니 한 번쯤은 걷고 싶다
- [마네킹을 보다](2021년)

#. 장남숙 시인(1964년생) : 경북 경주 출신으로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조시인으로 등단. 현재 부산 범일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며, 짬짬이 좋은 시조를 발표하고 계심.




<함께 나누기>

오늘 시는 외형상 3장 6구로 돼 있어 시조임이 뚜렷하니 새삼 시조인가 아닌가를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구별배행이나 음보별배행 같은 현대시조의 운율 택하지 않은 고시조 같은 율격을 지킨 3연으로 된 연시조입니다.
‘마네킹’은 원래 문학의 글감으로 아주 친근합니다. 소설엔 주로 판타지 작품에 많이 쓰였고, 시에선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정대호 시인의 시집 [마네킹도 옷을 갈아입는다], 조창환 시인의 시집 [마네킹과 천사], 우원호 시인의 시집 [도시 속의 마네킹들] 등.

시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 번도 제 옷을 입어본 적 없었다 / 얼기설기 시침핀 허리춤을 찌르고 / 온종일 부동자세로 눈을 뜬 채 꿈꾼다”

마네킹은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어본 적 없습니다. 고객의 입맛에 맞는 옷을 걸치고 온종일 부동자세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멋진 옷을 입어도, 남들의 부러움을 사도, 길거리를 나다닐 수 없는 유리벽 속에 갇힌 삶입니다.
시인이 마네킹의 외부적 모습을 표현할 때는 그 속에만 빠져서는 안 되며 거기 담긴 속뜻을 알아야 합니다. 흔히 ‘마네킹 같은 삶’이라 할 땐 자기 생각이나 의지 없이 남의 사고방식이나 유행을 따라가는 삶을 가리킵니다. 깨친 사람들은 ‘주체적 삶을 살아라’ 하지만 그게 그리 쉽습니까. 갈수록 자존감은 없어지니 마네킹 같은 삶을 살 수밖에.

“당겨온 계절 따라 거짓 웃음 흘리고 / 핏기 없는 그녀가 유리벽에 마주 선다 / 후다닥 갈아입은 옷 정가표가 도도하다”

마네킹은 한 번도 계절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합니다. 언제나 현 계절보다 한 계절 또는 두 계절 앞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봄엔 여름옷을, 여름엔 가을옷을 입어야 합니다. 밖엔 눈이 내리더라도 그녀가 입는 옷은 화사한 봄옷 아니면 민소매 여름옷뿐.
마네킹은 날마다 거짓 웃음만 흘리며, 핏기 없이 표정 없이 남들 앞에 섭니다. 소위 포커페이스지요. 고객들에게 그녀는 의식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정가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뿐.

“관절이 삐걱댈 대 쉼표 하나 생길까 / 레이스 자락 속에 시린 속내 매달았나 / 무표정 데칼코마니 한 번쯤은 걷고 싶다”

마네킹은 아무 꿈도 없이 사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녀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밖에 나가 멋있는 옷을 입고 걸어보는 꿈. 꿈이 꿈으로 끝난다면 그 꿈은 허망하겠지요. 마네킹의 꿈은 현실화될 수 없습니다. 가능성 있는 이상이 아닌 공상이니까요.
다만 마네킹처럼 살아가도 우리에게 꿈이 있다면 그와 다르겠지요. 내일이 오면 달라지리라는. 허나 어쩌면 마네킹의 꿈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내일이 현재와 다르리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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