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7편 : 권혁웅 시인의 '삼겹살 구조론'
@. 오늘은 권혁웅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삼겹살 구조론
권혁웅
네가 내 아래서 앗 뜨거, 뜨거 라고 말할 때
말과 말 사이 침묵처럼, 말의 바탕인 침묵처럼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음악처럼
ㅅ나 ㅊ라고 말할 때
네 등이 천천히 젖어들 때
*살[肉體]의 일은 살에게, 지방의 일은 지방에게
내가 네 위에서 땀을 흘릴 때
그 땀이 운명의 손에 튀어 앗 뜨거, 뜨거 라고 놀랄 때
내가 잘게 썬 김치나 콩나물처럼
축 늘어질 때
네 등이 점점 딱딱해질 때
살의 일은 살에게, 지방의 일은 지방에게
운명이 우리의 체위를 바꿀 때
집게와 가위를 들고 우리를 누비이불처럼 나눌 때
모든 말 뒤에 남은 침묵처럼
ㅎ나 ㅎㅎ라고 말할 때,
굳기름처럼 하얀 얼룩일 때
누군가 새롭게 내 등 뒤로 다가오고
그때 우리는 완성된다
- [현대시학](2016년 7월호)
* 서정주의 시 「선덕여왕의 말씀」에서 인용
#. 권혁웅 시인(1967년생) : 충북 충주 출신으로, 199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현재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세태 풍자의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삼겹살, 삼겹살 구워 한 점 이로 씹을 때의 식감과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의 고소함 뜨거움. 그래서 오늘 시는 그런 특징을 담은 시인 줄 알고 택했는데 읽어가다가 ‘어, 이런 시가 아니구나!’ 했습니다. 글벗님들도 이미 눈치챘을 듯.
무심코 읽으면 삼겹살 먹는 일상을 그려내는 것 같으나, 그래서 첫 시행 “네가 내 아래서 앗 뜨거, 뜨거 라고 말할 때”도, 뜨거운 삼겹살을 이로 뜯고 목으로 넘길 때의 감흥을 표현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특히 권혁웅이란 시인을 생각하면.
제가 몇 년 동안 배달한 시인의 시 제목만 나열해 봅니다.
「소문들 - 짐승」(2023), 「장동건」(2022), 「고스톱 치는 순서는 왜왼쪽인가」(2021) 「마징가 계보학」(2020), 「선데이서울, 비행접시 ~~」(2019)
제목만으로 암시 받았겠지만 세태 풍자에 아주 능수능란한 시인입니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을 의뭉스럽게 표현한 시입니다. 질펀한 성행위를 비유와 암시의 기법으로 그려낸. 그런 선입견(?)을 갖고 읽으면 ‘아, 그렇네!’ 하실 겁니다. 다만 이렇게 외설적인 상황을 암시와 상징으로 묘사하니 소설 같은 산문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입니다만.
첫 시행부터 뜨겁습니다. “네가 내 아래서 앗 뜨거, 뜨거 라고 말할 때”를 세세히 해석할 필요는 없겠지요. 뒤에 이어지는 시행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음악처럼 ㅅ나 ㅊ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살(肉體)의 일은 살에게”
이 시구는 시 아래 덧붙여 놓았듯이 서정주의 [선덕여왕의 말씀]이란 시에 나오는데, [지귀 설화]에서 여왕의 외모에 반한 지귀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선덕여왕이 한 말 ‘살의 일’은 육체적 사랑을 뜻하는데, 아무리 육체적 사랑이 강해도 정신적 사랑에 미치지 못함을 알려주려 합니다.
다만 뒤에 이어진 “지방의 일은 지방에게”라는 시구는 권혁웅 시인이 ‘살의 일은 살에게’와 운율의 짝을 맞추려고 끼워 넣은 걸로 보입니다. 이를 덧붙인 시인의 의도는 뭘까요? 서 시인은 정신적 사랑이 육체적 사랑보다 낫다란 의미를 표현한다면, 권 시인은 정신적 사랑이나 육체적 사랑이 다르지 않음을 드러내려고. 아무리 정신적 사랑이 중요하다고 해도 육체적 사랑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게 사랑일까 하는.
“내가 네 위에서 땀을 흘릴 때 / 그 땀이 운명의 손에 튀어 앗 뜨거, 뜨거 라고 놀랄 때”
1연과 같은 구조로 돼 있습니다. ‘네가 내 아래서 앗 뜨거, 뜨거 라고 말할 때’나 ‘내가 네 위에서 땀을 흘릴 때나’ 같으니까요. 다음에 이어지는 “내가 잘게 썬 김치나 콩나물처럼 / 축 늘어질 때 / 네 등이 점점 딱딱해질 때”란 시행도 해석이 가능하나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생략합니다.
“운명이 우리의 체위를 바꿀 때 / 집게와 가위를 들고 우리를 누비이불처럼 나눌 때”
사랑도 나이가 들면 ‘운명의 체위를 바꾸게 되고’, 끌어안고 하나가 되어 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각각 이불을 따로 덮고 자게 됩니다. 나이 들면 각방 쓴다는 의미를 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비록 한 침대를 쓰더라도 둘 사이는 젊을 때처럼 한몸으로 엉켜들지 않고 따로잠을 자게 됩니다.
“누군가 새롭게 내 등 뒤로 다가오고 / 그때 우리는 완성된다”
이 시구는 해석이 어렵습니다. 해서 제 맘대로 풀어봅니다. 적어도 새로 연인이 생겨 관계를 맺었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전에는 한몸으로 포개지는 진득한 육체적 사랑을 즐겼다면 이제는 뒤에서 살포시 안아주는 사랑이면 족하다는 뜻으로.
오늘 시는 우리가 자주 먹으며 즐겨 먹는 삼겹살, 이 음식을 갖고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서정. 참 시인의 역량이 어디까지 미칠지 대단합니다.
이제 나이 드니 한 가지는 분명해진 듯합니다. 젊을 적엔 격정적인 사랑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잔잔하고 은은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 더 좋아졌다고. 갑자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란 영화가 떠오르는군요. 심장을 쿵쾅 쿵쾅 두드리는 센 장면은 없어도 두 중년남녀의 아름답게(?) 그려진 불륜의 사랑이...
*. 첫째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 포스터라면, 둘째는 연극 선전 포스터랍니다.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느낌이 전혀 다를 겁니다.
둘 다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