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93)

* ‘메밀꽃 필 무렵’ *



대학 다닐 때 [창작론]을 가르치는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소설을 쓰려면 적어도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백 번은 읽어야 한다.”
물론 ‘메밀꽃 ~~’은 일제강점기에 나온 대표 단편소설이며, 이효석을 우리나라 3대 단편소설 작가로 부르도록 만든 소설이기도 하다.

이효석의 소설을 읽으면 유명 시인의 묘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설을 쓰려면 그런 섬세한 묘사 기법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리라. 하기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한강도 처음엔 시인으로 등단하지 않았는가. 그 점이 작품의 문학성을 높이는데 한몫했음을 부인할 이가 뉘 있으리.




오랫동안 문학기행을 기획하여 인솔하며 다녔으니 당연히 「메밀꽃 필 무렵」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도 다녀왔다. 그 당시에는 메밀꽃밭이 없었는데, 나중에 [이효석 문학관]을 짓고 물레방아도 만들고 메밀꽃도 심어 지금은 ‘메밀꽃 축제(딴 이름, '효석문화제')’까지 열린다.

소설 속에 지금 읽어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구절을 보자.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정말 돈을 주고 이 구절을 살 수 있다면 사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 뒤 혹 시골길을 걷다가 메밀꽃이 피어있으면 절로 그 자리에 발길을 멈춘다. 만약 보름달이 뜨는 밤중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리. 그렇게 좋아하는 메밀꽃밭이 현재 머무는 곳에서 십여 분 거리에 있다니...




올 한가위 연휴 시작인 10월 3일 원래 간월재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제10회 세계산악영화제’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가지 못하게 되자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양산 통도사였다.
이곳은 한 해 두어 번은 꼭 들르던 곳이라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입구 주차장에서 절까지 걷는 길이 참 운치를 풍긴다. 절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가려다 한쪽 길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러 보여 붙잡고 물어보니 저 위에 메밀꽃밭이 조성돼 있는데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고 하지 않은가.

처음엔 설마 했다. 통도사 가장 큰 암자인 극락암에 이르는 길엔 예전에 논밭만 잔뜩 있었는데... 설마 거기에. 그 ‘설마’가 들어맞았다. 논밭을 다 갈아엎고 메밀밭으로 바꾸었는데 마침 메밀꽃이 내리는 비를 뚫고 하얗게 웃고 있었다.
세상에! 강원도 봉평까지 가지 않아도 메밀꽃밭을 볼 수 있다니. 아니 솔직히 그곳 메밀꽃밭보다 더 아름다웠다. 특히 메밀꽃밭 뒤에 병풍처럼 영축산이 둘러쳤으니. 앞에는 광활한 메밀꽃밭, 뒤에는 신령스러운 산. 무슨 설명을 덧붙이랴.




어느 곳이든 메밀꽃밭을 들른 적 있다면 꽃이 한 달 이상 피어 있음을 잘 알리라. 이는 한 송이가 한 달 이상 간다는 말이 아니다. 백일홍처럼 한 송이가 지면 곁에 다른 송이가 피어나 100일 간 붉게 핀 것처럼 보이듯이 메밀꽃도 이쪽 송이가 지면 저쪽 송이가 피어 오래가는 것처럼 보인다.
글 쓰는 현재 아직 메밀꽃이 제법 볼 만한데, 비록 지더라도 메밀이 까맣게 익어가는 모습 또한 참 이쁘다. 벼 익으면 ‘황금빛 들녘’이라 하는데, 메밀이 익으면 ‘흑진줏빛 들녘’이 된다. 특히 잘 익은 메밀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 흑진주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다들 통도사를 가봤을 테니 다른 설명은 끝내자. 굳이 종교가 달라 절을 찾을 필요가 일지 않더라도, 또 '우리나라 절이 거기서 거기지' 하시는 분도 주변 암자는 꼭 한 번 둘러보시길. 불자라면 통도사 13암자 순례길을 걸어 보면 좋고, 특히 비신자라도 백운암에는 꼭 한 번 올라가 보시길. 이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황홀하니까.




내가 통도사를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극락암’과 ‘백운암’에 남다른 추억이 있어서다. 예전 이십 대 중반 ‘부산불교청년회’ 서기로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 ‘극락암’에 가 경봉 큰스님을 뵈었다.
그때 큰스님께서는 때때로 야단법석 (野壇法席 : 마당에 자리를 만들어 부처님 말씀을 전함)을 열어 귀한 법문을 전하셨다. 극락암에서 경봉 큰스님을 뵙고 나면 다음 차례는 백운암으로 오른다. 그곳에 오르는 과정은 등산이라 해야 할까. 지금보다 길이 안 좋아 그때는 훨씬 더 힘들었다.
그래도 거기 오르면 젊은(?) ‘초현 스님’이 계셔 불교 관련 이런저런 상식 애길 들으며 차 한 잔 대접 받았는데 이제 두 분 모두 부처님 곁으로 가셨다. 한 분은 삼진(三進)이란 법명까지 지어주셨고, 다른 한 분은 머리 깎으려는 나를 붙잡아 주셨고. (이 이야기는 다음에 적으련다)

이제는 비록 종교를 달리하지만 그래도 절에 가면 편안함은 똑같다. 다만 통도사도 주변 암자도 너무 커져 관광지가 돼 버린 게 아쉬울 뿐.


(메밀꽃밭 아래 한들못)



그저께(10/8) 글감 얻으려 다시 찾았는데 이번에도 날씨가 좋지 않아 백운암에 가지 못하고 극락암에 차를 세웠다. 비록 큰스님은 안 계시지만. 거기서 묘한 장면을 보았다. 약수 흘러나오는 바로 옆 풀밭에 토끼 한 마리가 나와 노는 게 아닌가.
사람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고 제 혼자 풀 뜯어먹고 본체만체한다. 흔히 ‘손을 탔다’라는 말 그대로 이미 사람 손을 타 '반려토'가 돼 버렸음인가. 그런데 거기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선 고양이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녀석을 쓰다듬어도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받아들이며 흐뭇해한다.

세상에! 나 아는 상식으론 고양이와 토끼는 절대 함께 지낼 수 없다. 고양이가 토끼를 보자마자 물어 죽이니까. 고양이에게 닭도 마찬가지다. 허나 병아리 아닌 중닭쯤 되면 닭은 날아 달아날 수 있다. 그도 아닌 장닭에겐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건만.
토끼는 전혀 아니다. 녀석이 아무리 커도 고양이 앞발 한 방에 나가떨어져 일어나지 못한다. 흔히 먹이 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처한 게 토끼 아닌가. 절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자비심을 터득했음인가. 부처님의 자비와 은덕이 인간만을 위함이 아닌 온 중생(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게 뻗친다는 불교 진리에 어긋남이 없다.


(백운암 - 구글 이미지에서)



<뱀의 발(蛇足)>

통도사 메밀꽃밭 가려면 매표소를 통과해야 하는데, 주차비(경차 2천 원, 소형차 이상 4천 원)를 낸 뒤 제2주차장에 차 대놓고 절 구경하고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더 좋기론 매표소 바로 직전 오른쪽 주차장에 차 대놓고 '무풍한송로'를 따라 오르시기를)

두 번째 방법으론 역시 매표소를 통과한 뒤 아예 ‘극락암’ 방향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면 메밀꽃밭 근처 넓은 주차장이 보이니 거기 주차한 뒤 둘러보시면 됩니다.


평일에는 얼마든지 차 댈 수 있으나 휴일에는 밀릴 수도 있으니, 젊은이를 위해 백수인 노털님들은 평일을 이용하시길. 그리고 이왕 거기까지 갔으면 백운암까지 올라가 보시길. 특히 시원한 가을바람 맞으며 산을 오르면 가을 정취를 충분히 만끽하게 될 겁니다.

*. 사진 1, 2, 3, 4는 울산에서 활동하시는 사진작가 이태열 님의 작품이며, 5번 '한들못'은 제가 찍었습니다. 이 못도 둘러볼 만합니다. 특히 바위 위에 쇠백로 앉으면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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