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08)

제408편 : 송수권 시인의 '산문에 기대어'

@. 오늘은 송수권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산문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 [문학사상](1975년)

* 산문(山門):① 산의 입구 ② 절의 바깥문
* 그리메:‘그림자’의 옛말
* 낱 : 셀 수 있는 물건의 하나하나
* 정정(淨淨)한:아주 맑고 깨끗한
* 즈믄:천(千)의 옛말로 ‘많은’ 뜻
* 산다화(山茶花):동백나무의 꽃
* 부리고 : 짐 따위를 내리고, 풀어놓고

#. 송수권 시인(1940~2016) : 전남 고흥 출신으로 197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남도의 정서를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시인이란 평을 받았는데, 2005년까지 순천대 문창과 교수로 근무하다 퇴임한 뒤 2016년 별세.




<함께 나누기>

이 시는 제2회 [소월시문학상] 받은 송수권 시인의 ‘등단작’이면서 ‘대표작’입니다. 그리고 이 시에 붙은 별명은 ‘휴지통에서 건진 시’. 시인이 여러 곳에 응모했지만 내리 불합격만 받아 마지막이란 심정에서 [문학사상]에 응모했는데, 여기서도 퇴짜 맞으면 시인으로서의 삶을 끝내려 했답니다.
그리고 원고지가 아닌 백지에 써 응모한 바람에 거기 기자가 원고지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의 글이라며 휴지통에 버렸고. 그렇게 끝나나 했는데 당시 편집 주간이던 이어령 님이 휴지통에 있던 원고를 발견해 1975년 [문학사상]에 시인의 데뷔작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오늘 시는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란 두 번이나 반복되는 시행을 보아 누이의 죽음을 모티브로 해서 쓴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 누이의 죽음을 글감으로 쓴 시가는 아주 오래전부터입니다. "제망매가(祭亡妹歌)"란 향가부터.
그런데 시에선 누이동생이지만 사실 자살한 남동생 대신 누이를 끌어왔다 합니다. 아무래도 남동생의 죽음보다 어린 여동생의 죽음이 더 애잔할 듯. 다만 화자는 누이의 죽음을 무작정 슬퍼만 하는 게 아니라 슬픈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 보이면서 그리움과 극복의 마음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누이야 /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이 시를 끝까지 끌고 나가는 시어는 세 번이나 반복된 '가을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입니다. 따라서 이 시구를 제대로 이해하면 술술 풀릴 것입니다. 가을산이 만든 그림자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이라니. 가을산이 호수에 비쳐 그림자를 만드는 장면은 저도 여러 번 봤지만.
이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누이가 유달리 호수에 비친 가을산 그림자를 좋아해서 가을산 그림자를 보는 순간 누이가 떠올랐다고. 다음은 가을산이 호수에 빠져 만든 그림자가 누이의 눈썹을 닮았다고. 그럴 수도 있지요. 축소해 보면.
평론가 대부분은 ‘가을산이 호수에 비쳐 만든 그림자를 보니 누이가 생각났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눈썹’은 죽었지만 차마 아쉬워 아직 이승을 떠돌고 있는 누이의 영혼을 비유한다고 합니다.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누이의 죽음에 저절로 흘러내리는 맑디맑은 눈물을 ‘돌로 눌러 죽이며’ (터져 나오는 슬픔을 억지로 삼키며)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수많은(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깊은 강물처럼 수많은 슬픔의 밤을) 그런 밤을 지내야 했습니다.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1연과 차이는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입니다. 차마 떨치지 못하고 남아있던 누이의 영혼도 이제는 덧없이 사라져 갑니다. 그럼 누이에 대한 그리움도 사라질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움이 더 절실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슬픔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십니다.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 눈썹 두어 낱이 /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죽은 이를 향한 그리움이 극에 달하면 그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던가요? 죽은 누이의 모습이 연못에 다시 보입니다. 이제 화자는 깨닫습니다. 누이는 죽었지만 영원한 이별은 아니라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어떻게?
‘산문에 기대어’란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 시는 불교사상을 아래 깔고 있습니다. 즉 불교의 ‘윤회사상’ 말이지요. 지금은 헤어져도 언젠가 우리는 극락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듯이 말입니다.

저는 오늘 시를 읽으며 향가 제망매가를 떠올립니다. 시인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3단 형태의 짜임과 시상 전개가 상당히 비슷합니다. 아 물론 표현에 있어선 다르지만.
그래서 향가 "제망매가"의 작가 월명사가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마지막 구절에 ‘아아 극락에서 만날 우리는 도 닦으며 그날을 기다리겠다’ 하고 노래했듯이 나중에 극락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이 시에서 그렸지 않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제목에 나오는 ‘산문(山門)’은 속계(俗界)와 탈속(脫俗)의 경계이면서 한편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지는 경계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산문에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고 산문에 기대어 마음의 영생을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메밀꽃 필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