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11)

제411편 : 이창수 시인의 '불구경'

@. 오늘은 이창수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불구경
이창수

숭례문이 불타던 날
흑석동 옥탑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누군가 나서서 금방 끌 거라고 믿었다
별일 없을 거라고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옛 애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숭례문이 무너지는 모습을 티브이를 통해 보았다
아랫도리에서 손을 빼고 양동이를 들고 나서야 했지만
나는 나가지 않았다

용산에 불이 났다
티브이를 통해 불구경했다
여섯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다시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식어버린 과거의 일들을 더듬었다
비겁하다고 자책하면서도
아랫도리에서 손을 빼지 못했다

사는 게 그랬다
- [귓속에서 운다](2011년)

#. 이창수 시인(1970년생) : 전남 보성 출신으로 2000년 [시안]을 통해 등단. 현재 광주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보성예총’과 ‘시가 흐르는 예술학교’ 회장을 맡아 열심히 일함.
(동명이인으로 전남 담양 출신의 1942년생 이창수 시인도 계심)




<함께 나누기>

네로 황제는 로마에 불 질러 놓고 ‘리라’ - 현악기 ‘하프’의 원조 -를 켜며 불구경을 즐겼다고 합니다. (*. 네로가 로마에 불 지른 건 사실이 아니라 함) 여기서 만들어진 영어 관용어구 ‘fiddle while Rome is burning’ (로마가 불탈 때 바이올린을 켜다)는 재난 앞에 무관심함을 뜻합니다.

1980년 5월 18일 저녁, 동료교사 두 명과 술 마시며 뉴스를 보는데 폭도들의 폭거를 진압하기 위해 군병력 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이렇게 말했지요.
“아 저기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 못 말린다.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빨갱이들과 내통했다는 기사도 떴던데...”
“경찰이 제압 못하면 군대라도 투입해야지.”
그 뒤 세 사람은 종종 술을 같이 했지만 ‘5․18 민주화 항쟁’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부끄럽던지. 하지만 내 가족 내 친척이 당한 일이 아니다 보니, 5월 18일에만 조금 부끄러움 느끼며 살뿐 다른 때는 대충 그러고 삽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숭례문이 불타던 날 / 흑석동 옥탑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 누군가 나서서 금방 끌 거라고 믿었다”

남대문(숭례문)이 불탈 때도 술을 마시며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저 정도 불이야 금방 끄겠지’ 했습니다. 왜냐면 우리나라 ‘국보 제1호’가 아닙니까. 시에서처럼 ‘별일 없을 거라고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옛 애인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정말 별일 없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용산에 불이 났다 / 티브이를 통해 불구경했다 / 여섯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소위 ‘용산참사’라 불리는 이 사건은 2009년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철거민과 경찰의 충돌로 화재가 나 많은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그날 역시 모임 있어 술 한잔하고 있었는데 그때도 ‘뭐 별일 있겠어?’ 하며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가까운 이가 없다는 핑계로.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도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다만 세월호는 그때 교사 신분이라 얼마나 원통하던지. 며칠간 참 힘들었는데... 허나 시간 흐르면서 몇 월 몇 일에 일어났는지는 아예 기억 못하고,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조차 잊고 그렇게 삽니다.

“비겁하다고 자책하면서도 / 아랫도리에서 손을 빼지 못했다”

용산사태와 세월호 사건 때 집회에 나가 민중가요를 불렀지만 그뿐, 내가 좀 더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서지 못해 비겁하다고 자책만 했고... 참 여기서 ‘아랫도리에서 손을 빼지 못했다’는 시구는 화자가 자위행위 했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의식 있는 행동 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새깁니다.

“사는 게 그랬다”

‘사는 게 그랬다’, 참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시구입니다. 억울한 죽음, 분노를 치밀게 하는 사건에 앞장서서 진실을 밝히려는 일은 겁나서 못하고, ‘내가 안 해도 누가 하겠지’, ‘내가 그런다고 바뀌겠어?’, ‘내 일도 아니잖아’ 하며 슬쩍 한 발씩 두 발씩 뺐습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다들 침묵하고 살잖아. 그래 그렇게 조용히 입 닫고 사는 거야. 강 거너 불구경하듯이. 그게 어쩜 가장 현명한 선택일 걸.’ 하고 혼잣말하며.


(용산참사 현장 사진)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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