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93)

제93편 : 생활글(수필)은 100% 진실해야 할까?

* 생활글(수필)은 100% 진실해야 할까? *



<하나 : ‘자바의 동쪽’>


요즘 외국 뉴스에 화산 폭발이 자주 뜬다. 물론 화산 폭발이 그만큼 빈번해졌다는 말도 되지만 시각적 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이리라. 화산 폭발을 뉴스로 볼 때마다 54년 전쯤 고등학 다닐 때 본 [자바의 동쪽]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나는 기억력 별로라 다들 기억하는 일은 잊어버리고, 희한하게도 남들이 잊고 있는 일들은 곧잘 되살려낸다.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이 일어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 [자바의 동쪽] 포스터)



“헨슨 선장이 이끄는 배가 자바 인근으로 난파선 탐사를 위해서 출항한다. 조난당한 난파선 속에 엄청난 양의 진주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그 진주를 캐내기 위해서.

이 배에는 30여 명의 죄수들도 함께 호송되고 있어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화산 폭발과 해일로 인한 위험 속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솔직히 기억 안 나 인터넷을 참고했으나 화산 폭발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당연히 진짜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 찍었는 줄 알았는데, 십여 년이 지나 해외토픽에 실린 ‘버나드 L. 코왈스키’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감독은 실제 화산이 폭발하는 여러 곳을 찾아가 촬영까지 했다고 한다. 허나 대실망. 도무지 화산 폭발의 위력을 느낄 수 없었다나. 고민하다가 임의로 가공의 세트를 만들어 그 장면을 찍었더니 영화와 같은 광경이 연출되었단다. 그러니까 가짜가 진실을 누른 격이다.


(화산 폭발 사진 – 인도네시아 '루앙산')



2003년 미국의 ‘제임스 프레이’란 사람이 자신의 약물 중독과 재활 경험을 담은 자전적 회고록 [백만 개의 작은 조각들](A Million Little Pieces)을 펴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환호를 받았고, 당대 최고 인기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출연했고, 그해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데 책이 나온 지 3년 뒤 작가와 잘 아는 이의 폭로에 책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이야기는 지은이가 꾸며낸 허구임이 밝혀졌다. 일부 내용은 완전히 날조되었고, 다른 부분은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르게 묘사되었다. 이로 하여 진실을 담아야 할 ‘회고록(수필)’의 신뢰성에 대해 큰 논쟁이 붙었다.


문제는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18년 [A Million Little Pieces]라는 제목으로 드라마가 제작되어 다시 한번 인기를 끌게 되었다. 참 이해 안 되는 상황이다, 지어낸 이야기인 소설도 아닌데. 사실을 바탕으로 써야 할 회고록(수필)조차 허구가 가미되어도 좋다는 말인지?


([Million Little Pieces] 표지)



<둘 : 법정 스님의 ‘무소유’>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수필가를 들라면 세 손가락 안에 법정 스님이 듦을 부인할 사람 없으리라. 평소 솔직 담백한 글을 통해 ‘버리고 떠나기’란 무소유 철학을 전파해 소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한 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헌데 이런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찬물을 끼얹은 이가 나타났으니 다른 종교인도 아닌 2010년 당시 한창 이름 날리던 혜민 스님의 발언에서 나왔다.
“법정 스님이 무소유가 가능했던 것은 인세(저작권 있는 창작물이 판매될 때마다 나오는 돈)가 있었고, 그로 하여 신도나 주지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살 수 있었, 그 돈으로 베풀 능력도 되니 역설적으로 무소유가 가능했다.”

그러니까 그의 발언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 주창이 가능했음은 인세와 같은 물질적 기반 덕분이라 언급하며 글과 실생활의 괴리를 비판했다. 언뜻 들어보면 그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왜냐면 펴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인세 수입이 상당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드니 말이다.
허나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스님이 세운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를 통해 장학금 등 이웃을 돕는 데 모두 기부되었다고 한다. (‘혜민 스님 논란’은 이것 말고도 인터넷에 무수히 떠 있으니 그것을 참조하시길)


(법정 스님 생전 모습)



스님은 열반에 들기 전 유언에 맏상좌(수제자)인 덕조 스님을 통해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모두 다 없애라고 하셨다. 그 이유에 대하여 덕조 스님은 “다음 생으로 말빚을 가져가지 않겠다는 뜻과 수행자는 자기의 뒷모습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라고 평소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다.


나는 문득 달리 생각해본다. 스님이 처음에는 글로 대중들을 깨우치는 가르침으로 활용했는데, 그 글이 다른 형태로 변질돼 오해의 소지를 남기게 된다면? ‘사람은 떠나도 글은 남는다.’ 스님은 앞으로 당신 글이 쓴 의도와 상관없이 곡해되어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까 두려워하진 않았을까?

“스님께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칭호가 ‘작가’였다.”라는 덕조 스님의 말씀을 덧붙인다. 왜 작가란 칭호를 가장 싫어했을까? 작가는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시원찮은 내용이라도 작가의 손이 닿으면 아름답게 변한다. 마치 화가의 손에 맡기면 실제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듯이.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 두 분의 말씀을 담은 책 표지)



글을 쓰는 작가든 그림 그리는 화가든 궁극적으로는 많은 이들이 자기의 글을 읽고 자기의 그림을 봐주길 바라리라. 스님도 처음엔 당신의 불심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집중했으리라. 한 편 두 편 발표하다 보니 독자들이 점점 늘어났고.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읽는 이를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눈길 끌거나 감동 줄 장면 묘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그렇게 표현에 약간의 조미료를 쳤어도 많은 사람에게 부처님 말씀 전파라는 기본 바탕은 흔들리지 않았을 터.


허나 일반 대중은 스님과 같은가. 글 속에 담긴 진리를 찾으려 하기보다 겉으로 드러난 의미에 치중하기에 글 쓴 의도와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열반을 앞두고 속인(俗人)들의 입에서 들려오는 이러저러한 얘기가 듣기 불편했으리라. 그래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은 다시 펴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을까.


(법정 스님이 거처하던 불일암)



<셋 : 나의 ‘생활글’ 쓰기>


내가 남에게 ‘드러내는 글쓰기’를 시작한 연도는 2001년부터다. 삶의 가치 기준을 바꾸면서 속하게 된 교원단체의 게시판에 '울엄마의 세 가지 거짓말'이란 글을 처음 올렸다. 그 뒤 계속 올려라는 많은 이의 격려도 받았고.

자신감이 생기자 다음 차례는 나를 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 도전하기. 당시 거의 유일한 인터넷 뉴스 매체에 글 싣기였다. 얼만 안 돼 내 이름으로 된 글방을 갖게 되고, 시민 기자증도 얻게 되자 얼마나 기뻤던지. 그래도 읽는 이는 적은 편이었다.


그때는 교사 신분이었지만 교직 생활에 관한 내용보다 내가 사는 달내마을에서 직접 겪은 산골생활을 진솔하게 실었다.
아무 일 없었다면 정직한 산골생활 이야기를 계속 더 열심히 썼으련만 한 번 두 번 과속방지턱을 넘듯 덜컥덜컥 걸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가까이 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두고 마을주민과 회사 간의 입장 차를 담은 글 - 글이라기보다 펼침막을 활용한 -을 양비론적 시각에서 썼다.


(펼침막의 예 - 당시 쓴 글과 관련 없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는 이가 다른 지역 사람에게 들었는데, 글쓴이가 아무래도 그곳 마을 사람인 것 같다며 ‘이따위 글을 쓴 인간이 도대체 누구야?’ 했던가 보다.

또 한 번은 마을에서 일어난 '불편한 진실'을 쓴 적 있다. 그 내용을 또 누가 읽은 모양인지 전해 들은 아들 한 명이 찾아와 대들듯이 따졌고.


이렇게 사실을 그대로 옮긴 글에 자꾸 태클이 걸리자 글쓰기가 조심스러워졌다. 다시 말해 사실을 사실대로 쓰기 힘들었다. 또다시 누군가 딴지를 건다면...

그 뒤 글을 쓸 때 논란의 여지가 있을 내용은 빼버렸다. 꼭 실어야 할 경우라도 우리 마을 일이 아닌 다른 곳에 사는 이에게서 들은 얘기로 바꿨다.

한 번 두 번 ‘왜곡하는 글쓰기’가 시작되면서 자꾸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자 희한한 현상이 벌어졌다. 클릭 수가 더 늘어나지 않은가. 메인에 오르거나 준메인에 오르는 글도 많아졌다. 다시 말하면 순수 ‘맹탕글’보다 ‘MSG를 살짝 친 글’이 더 인기 있었다는 말이다.


(현재 연재 중인 '브런치'에 실린 글인데, 무려 10000명 넘게 읽었단 통보를 받았다. 사실 지어낸 내용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어느 날 연재를 중단했다. 이런 글쓰기에 재미 붙이면 나중에 ‘사실 그대로의 생활글 쓰기’가 조미료 쳐진 ‘단맛 폴폴 나는 생활글’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 뒤 ‘시 배달’은 계속했지만 몇 년간 창작수필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죽 흐르다가 다시 펜을 잡았다.


아이들 가르칠 때 수필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글이 바로 수필이다.’ 함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럼 나는 100% 그대로 경험과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했는가? 아니다. 적어도 100%는 아니다. 그러면 조미료 치지 않은 음식맛처럼 밍밍해짐을 잘 아니까.
물론 ‘MSG 전혀 치지 않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셰프가 있다면, ‘MSG를 전혀 치지 않은 글’로 감동을 이끌어내는 수필가도 있다. 다만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 가끔씩 눈치 안 채게 살짝살짝 치지만. 그래도 영리한 독자야 금방 알아차리리라.

'이 아재, 오늘 글에도 MSG 쳤네.' 하며.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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