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12)

@. 오늘은 신현정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오리 한 줄
신현정

저수지 보러 간다
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
저 줄의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꽁무니에 바싹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한 줄이 된다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그저 뒤따라가면 된다
뒤뚱뒤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급기야는 꽥꽥대고 싶은 것이다
오리 한 줄 일제히 꽥 꽥 꽥
- [자전거 도둑](2005년)

#. 신현정 시인(1948년 ~ 2009년) : 서울 출신으로 1974년 [월간문학] 통해 등단. 서울에서 고교 교사로 근무하다 그만둔 뒤 카피라이터와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시를 쓰다가 6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남.




<함께 나누기>

새들 가운데 어미(우두머리)를 따라 한 줄(V자 포함)로 가는 종도 있고, 아예 어미랑 상관없이 얽히고설켜 여러 줄로 가는 종도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닭은 어미 주변에서 놀더라도 꼭 어미를 한 줄로 따라가진 않습니다. 허나 오리는 꼭 어미 뒤를 한 줄로 따라갑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종에도 기러기는 우두머리를 따라 죽 날아가고, 제비는 몇 그룹으로 나뉘어 자유롭게 날아갑니다. 한 줄로 따라가는 오리를 보고 어떤 사람은 오늘 시처럼 ‘저 줄의 말단(末端)에라도 서 꽁무니에 바싹 붙어 가고 싶다’라고 할 분도 계실 테고, 무리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싶은 분도 계실 터.

“저 줄의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 꽁무니에 바싹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오랜 전통의 돼지국밥집 아들이 그리 성적이 좋지 않았는지 대학 졸업 뒤 부모의 일을 물려받으라 했으나 듣지 않고 중소기업에 다녔답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그만 문을 닫자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할 수 없이 돼지국밥집 일을 맡게 되었답니다. 다행히 전과 다름없이 국밥집은 잘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께 말하고 그곳을 뛰쳐나와 다른 중소기업으로 들어갔고,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자 시집간 딸 부부를 불러 일을 맡겼답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하여 묻자 그 아들의 말입니다. ‘나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서 일하고 싶다’라고.

‘말단이라도 좋으니 줄의 꽁무니에 바싹 붙어 가고 싶다’ 하는 마음은 단체의 일원으로서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함께 나아가고 싶은 마음, 즉 공동체에 들어가 안정감을 찾으려는 소망을 뜻한다고 봅니다. 또는 내 한몸을 바쳐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의욕도 되고.

특히 ‘말단’이라는 시어는 어디든 소속이 된다면 가장 후진 자리라도 괜찮다는 의미이며, 그렇게만 된다면 꽁무니에 바싹 붙어서라도 가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니까 홀로 걸어가기보다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한 줄이 된다 /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한 줄이 되면 외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속의 힘을 갖게 됩니다. 그 힘은 나를 살찌게 하고 나의 발전을 돕습니다. 달리 소속이 되면 개인의 힘만 아니라 그 조직의 힘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생긴 까닭이 거기 있다지요. 혼자서는 경영자에 맞서 자기 권리를 찾기 힘드니 단체를 만들어 자기에게 부여된 권리를 찾겠다는 의지에서.
하지만 이 부분을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한 줄이 됨은 자율의지보다 그 조직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어떤 조직이든 들어가면 그 조직이 하는 좋은 일에 당연히 박수를 치지만 나쁜(조직의 이익만을 위한) 일에도 따라야 한다는 점.

“뒤뚱뒤뚱하면서 / 엉덩이를 흔들면서 / 급기야는 꽥꽥대고 싶은 것이다 / 오리 한 줄 일제히 꽥 꽥 꽥”

이 시를 읽으면 흥겨움이 일면서 절로 즐거워집니다.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오리처럼 뒤뚱뒤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며 그렇게 맨 뒤에서 따라가다 보면 급기야는 꽥꽥대고 싶을 테니까요.
문득 오늘 하루 새끼오리가 되어 어미 뒤를 뒤뚱뒤뚱 엉덩이를 흔들며 맨 뒤에 붙어 따라가고 싶습니다. 개구쟁이라면 형제들이 엄마 뒤를 다 따라갈 제 나 혼자 살짝 샛길로 샜다가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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