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0편 : 이향지 시인의 '입장의 차이'
@. 오늘은 이향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입장의 차이
이향지
삶은 계란으로 날계란 치는 건 반칙이야
누가 그래? 공장계란 주제에
날계란이 알아서 구르고 기었어야지
날계란으로 날계란 치기는 소동이야
너는 언제나 네 말만 하고 손가락 하나도 까딱 안 하잖아
삶은 계란도 울었지
깨트린 건 내가 아니야
힘이 내 죄를 만든 거야
힘은 투명해서 보이지 않아, 힘의 죄도
유정란도 펑펑 울었지
병아리가 되기도 전에 나는 익어 버렸어
암평아리 365개 넘게 들어 있는 알주머니까지 엉엉
모이통에 주둥이를 박고 있는 암탉들은 몰랐지
약병아리들도 노계도 닭장차도 병아리 감별사도 몰랐지
닭똥도 닭똥 나르는 손수레도 계란 나르는 컨베이어벨트도 조작하는 사람도 공장 건물의 그늘도 부도수표도 차압 딱지도 공장 둘레 졸참나무 이파리들도 만발한 애기똥풀꽃도 뻐꾸기 울음소리도 논바닥 헤매는 다슬기도 다슬기 뿔에 걸린 뭉게구름도
다 이유가 있어
다 할 말이 있어
다 말할 수 있게 해야 해
아니야 입장의 차이가 너무나 컸어
- [야생](2022년)
#. 이향지 시인(1942년생) : 경남 통영 출신으로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47세의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여든 넘은 나이에도 시 쓰기를 계속하는데, 동요 「반달」을 작곡한 윤극영 선생의 며느리.
(나이와 이름이 비슷한 [콩나물을 다듬으며]로 유명한 '이향아' 시인도 있으니 혼동 마시길)
<함께 나누기>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너와 나 입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나의 말은 옳고 너의 말은 옳지 않다, 아니면 나보다 네가 더 나은 것 같이 생각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너보다 못한 사람이 되니 내 입장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삶은 계란으로 날계란 치는 건 반칙이야"
삶은 계란으로 날계란을 치면 말할 것도 없이 날계란이 박살 납니다. 날계란 입장에선 분명히 반칙입니다. 애초 상대가 안 되는 불공정한 경기니까요. 하지만 삶은 계란은 당당합니다. 네가 먼저 잘못하지 않았느냐고. 약하면 대들지 말고 알아서 기었어야 한다고.
"너는 언제나 네 말만 하고 손가락 하나도 까딱 안 하잖아"
'너는 언제나 네 말만 한다'는 구절의 저쪽엔 '나는 언제나 내 말만 한다'는 구절이 생략돼 있습니다. 오늘 시를 읽으며 뜨끔하실 분이 꽤 될 겁니다. 저도 그 한 사람입니다만. 지금 우리 사회엔 각자 자기 말만 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삶은 계란도 울었지 / 깨트린 건 내가 아니야 / 힘이 내 죄를 만든 거야"
삶은 계란도 나름 할 말이 있습니다. 날계란을 깨뜨리고 싶어 깨뜨린 게 아니라 힘의 조절이 실패해서라고. 그러니까 잘못을 범하고서도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핑계부터 댑니다. 그래야 자신의 잘못이 상쇄되기라도 하는 양.
"힘은 투명해서 보이지 않아, 힘의 죄도"
슬쩍 끼워 넣은 듯한 시구 같지만 시인이 힘준 시구이기도 합니다. 힘이 강한 쪽이 그 힘을 숨기고 있다는 뜻보다는 상대가 대책하지 못하는 사이에 박살 내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요즘 세계는 정의의 사자로 여겼던 미국에 호되게 당하고 있습니다. 설마 했는데 가차없이 칼을 휘둘렀지요. 그렇지만 미국의 잘못을 따질 나라 하나 없는.
"유정란도 펑펑 울었지 / 병아리가 되기도 전에 나는 익어 버렸어"
유정란의 꿈은 병아리로 태어남에 있습니다. 헌데 인간은 유정란을 그냥 두지 않고 삶아버렸습니다. 어미인 암탉도, 365개 알주머니도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아무도 몰랐지만 세상은 그래도 그냥 잘 흘러갑니다.
"다 이유가 있어 / 다 할 말이 있어 / 다 말할 수 있게 해야 해 / 아니야 입장의 차이가 너무나 컸어"
이미 판정난 역사적인 사건조차 자기 개인 혹은 자기 당의 유불리를 따져 전과 다른 입장 차이를 보이는 일조차 빈번합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문제조차 생각하기에 따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부끄러움 모르는 인간이 되어갑니다.
여당으로 있다가 야당이 되고, 야당으로 있다가 여당이 되면 같은 사안을 두고 주장하는 바가 너무나 달라집니다. 참으로 입장의 차이가 너무나 커졌습니다.
오늘 나는 어디서 어떤 입장 차이를 보이며 행동하고 있을까요?
*. 사진 둘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