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7편 : 손현숙 시인의 '나사니까'
@. 오늘은 손현숙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나사니까
손현숙
마주 오던 사람하고 살짝 한 번 부딪쳤다
오래 쓰던 안경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쪽 다리 떨어진 안경
그만 버릴까, 주저하다 근처 안경점에 들렀다
안경점 남자는
이게 풀렸군요, 하면서
나사 하나를 돌려 박아 주었다
참, 간단하다
이렇게 감쪽같을 수도 있네요!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나사니까요, 한다
꼭꼭 조인 다음 보는 세상은
환했다
말짱했다
언제부터 너는 내게 천천히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풀리기 시작했던 거다
나사니까,
- [손](2011년)
#. 손현숙 시인(1959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99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작년에 우연히 발견한 시인으로 좋은 시가 많이 보여 앞으로 계속 배달할 예정이며, 현재 한서대와 고려대에 출강.
<함께 나누기>
재작년부터 맺은 고마운 인연으로 올해도 그림책 한 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나 다음 주 소개할 듯) 주된 내용은 '나사에 관한 글과 그림'입니다. 퇴직 전 마지막 수업에 했던 내용을 간추려 쓰고 그렸습니다.
희대의 천재 아르키메데스로부터 나사의 원리가 나왔고, ‘(一)자나사’에 이어 한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덧대 ‘십(十)자나사’를 만들었다는. 십자나사를 만들자 보쉬(BOSCH) 사의 한 엔지니어가 생각을 덧대 전동드릴을 만들었고, 그 전동드릴 덕분에 컴퓨터, 자동차, 원자로 같은 거의 모든 분야에 쓰이게 되었다는...
나사는 기본적으로 ‘풀고 조이는’ 기능을 가집니다. 둘을 이어주기도 하고 둘을 떼어놓기도 하는. 공구 같은 데서나 쓰여야 할 나사가 가끔 인간사에 들어와 쓰입니다. “저런, 나사 빠진 녀석 같으니!” 하며 혀를 찰 때처럼.
오늘 시는 화자가 마주 오던 사람과 부딪혀 끼고 있던 안경이 힘없이 떨어지면서 시작됩니다. 부딪힌 뒤 보니까 그만 한쪽 다리가 빠져버렸습니다. 버릴까 하다가 아직 부러지진 않은 듯하여 근처 안경점에 들릅니다.
안경점 주인이 보니까 나사 하나 풀려있을 뿐 멀쩡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풀린 나사를 조여 주었습니다. 순간 화자는 깨닫습니다. 나사 하나 조이니까 감쪽같이 멀쩡하게 변했으니까요. 감탄하는 화자에게 주인이 한 마디 덧붙입니다.
“나사니까요”
나사는 느슨해진 둘 사이의 틈을 메워줍니다. 시에서처럼 안경다리도 그렇고, 다른 기계도 그렇습니다.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에도 나사가 필요합니다. 느슨해졌다 싶으면 나사로 조여야 합니다. 너무 조였다 싶으면 풀어주고.
“꼭꼭 조인 다음 보는 세상은 / 환했다 / 말짱했다”
안경다리의 나사를 꼭꼭 조이고 나니 세상이 환히 보였습니다. 어그러진 듯이 보였던 세상이 말짱했습니다. 이쯤 오면 나사가 단순히 둘을 이어주는 역할뿐 아니라 세상을 바로잡는 일까지 함을 암시합니다.
“언제부터 너는 내게 천천히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 풀리기 시작했던 거다”
우리는 ‘등을 보이다’라는 관용어를 종종 씁니다. ‘외면하거나 무시하다’, ‘포기하고 도망치다’, ‘관계가 틀어져 떠나다’ 등으로. 이 시에서는 다른 뜻입니다. '등을 보이지 않는다'란 말을 떠올리면 쉬 이해될 겁니다. 상대를 믿지 못한다는 뜻이니까요.
상대에게 등을 보이면 칼 맞을 수 있기에 등을 보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내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라는 표현은 나를 믿게 되고 둘 사이에 갈등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오늘 시에 쓰인 ‘나사를 조이다’와 ‘나사를 풀다’도 활용하기에 따라 다양한 쓰임이 가능할 듯합니다. 꽉꽉 조여 숨쉬기도 힘든 이 세상에 나사 하나쯤 풀어놓고 사는 게 어떨까요 하는 식으로도 가능하고, 요즘 너무 나사 풀린 채로 살아서 그런지 의욕이 없어지니 다시 신발끈 묶고 풀어진 나사를 조여 힘차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로 해도 되겠고.
저는 너무 풀어져 있어 드릴로 힘껏 조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