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18)

제418편 : 송재학 시인의 '엄마가 있다'

@. 오늘은 송재학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엄마가 있다
송재학

여자는 방금 장례식장에서 어린 딸을 고이 보냈다 묵주만 자꾸 굴리면서 *입성이고 뭐고 추레해져서 여자는 누군가를 간신히 부른다 딸의 이름은 아니지만, 귀 기울이면 여자는 엄마 엄마를 되풀이한다 바짝 말라버린 하천을 맨발로 뛰어가면서 미간을 찡그리고 엄마를 부른다 딸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엄마 엄마, *입찬소리를 되풀이한다 엄마 속에 여자의 딸과 여자의 엄마와 딸의 엄마가 번갈아 나타난다 붙잡거나 저미거나 어루만지며 사무치던 엄마가 오롯이 이름을 부르고 있다
- [습이거나 스페인](2025년)

#. 송재학 시인(1955년생) : 경북 영천 출신으로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치대를 졸업한 뒤 현재 대구에서 ‘송재학의미치과의원’ 원장을 겸하고 있는 시인으로,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시를 많이 씀.

*. 입성 : ‘옷’의 속된 말
*. 입찬소리 : 사전에는 자기 지위나 능력을 믿고 지나치게 장담하는 말로 돼 있으나, 여기서는 크게 내뱉지 못하고 입안에서 우물거리는 소리로 보임.




<함께 나누기>

부산 영락공원에 안치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유골 봉안 기일이 만기가 됐다는 연락을 받고 연장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습니다. 납골당으로 바로 찾아갔으면 됐는데 처리 방법을 잘 몰라 사무실로 가다 화장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상주들은 죽 서서 당신들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 유해가 불타 없어지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저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하도 소리가 커 저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예순 초반쯤 되었을까, 그 중씰한 사내가 바닥에 퍼지르고 앉아 목이 터져라 “엄마!” “엄마!”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가끔 딸로 보이는 여인네가 ‘엄마!’ 하며 우는 소리야 들었지만 저 나이의 사내가 저렇게 바닥에 퍼지르고 앉아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엄마 찾는 일은 처음 보는 광경.
낯선 장면이지만 어느 장례식장보다 더 뭉클했습니다. 얼마나 불효했으면 저렇게 애통하게 엄마 찾나라기보다, 아직 보낼 수 없는데 아직 못다 한 효도를 다해야 보내드릴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와선가 하여.

오늘 시에서 화자는 시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입니다.
장례식장에서 한 여인을 봅니다. 그 여인은 어린 딸을 하늘로 보내고 몹시 슬퍼하는 중입니다. 그때 화자의 귀에 여자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분명하지 않아 가까이 가 귀 기울이니 들려오는 ‘엄마!’ 소리.
당연히 들려야 할 죽은 딸 이름이 아닌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 바짝 말라버린 하천을 맨발로 뛰어갈 때 내는 소리처럼 미간을 찡그리고 엄마를 부릅니다. 딸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엄마!’ ‘엄마!’ 하는 말을 되풀이하며. 아무리 들어도 딸 이름이 아닌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

“엄마 속에 여자의 딸과 여자의 엄마와 딸의 엄마가 번갈아 나타난다”

삶이 가장 위기에 처했을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소리, ‘엄마!’ 그래서 ‘엄마’는 나의 실존이 위협받을 때 남는 최후의 보루 같은 언어라고 하지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됐어도 슬플 때나 아플 때나 찾는 이름은 ‘엄마’입니다. 무조건 의지하고 싶은 존재이니까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서양 속담을 한 번쯤 다 들었으리라 믿습니다. 이 말은 신이 세상 모든 곳에 직접 행사할 수 없기에 당신의 사랑과 보살핌을 대신할 수 있는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자식에게 엄마는 신과 동격입니다. 허물어지려 할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그때 찾는 존재는 신 대신 엄마입니다. 한때 나의 몸을 품었던 존재였기에 이제 그 자리 빠져나온 지 오래됐지만 영원히 당신의 심장소리는 혈액 속에 가득 찰 것이기에.
갑자기 울엄마 생각이 납니다. 아픈 십 년 동안 좀 더 잘해드렸더라면. 아니 좀 나쁜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영락공원에서 본 그 사내처럼 퍼지르고 앉아 펑펑 울고 싶습니다. ‘엄마!’ ‘엄마!’ 하고 소리치며.
그 사내가 참 부럽습니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펑펑 우는 그 사내가. 부끄러움도 다 팽개치고 절로 우러나오는 그런 울음을 한번 울고 싶습니다.



*. 사진은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pixabay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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