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9편 : 강연호 시인의 '개미'
@. 오늘은 강연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개미
강연호
절구통만 한 먹이를 문 개미 한 마리
발밑으로 위태롭게 지나간다 저 미물
잠시 충동적인 살의가 내 발꿈치에 머문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 외에는 눈길 주지 않는
저 삶의 절실한 몰두
절구통이 내 눈에는 좁쌀 한 톨이듯
한 뼘의 거리가 그에게는 이미 *천산북로이므로
그는 지금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게 아니다
누가 과연 미물인가 물음도 없이
그저 타박타박 화엄 세상을 건너갈 뿐이다
몸 자체가 경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노상 엎드려 기어다니겠는가
직립한다고 으스대는 인간만 빼고
곤충들 짐승들 물고기들
모두 오체투지의 생애를 살다 가는 것이다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2001년)
#. 강연호 시인(1962년생) : 대전 출신으로 1991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서정주의’의 대표주자란 평을 들으며, 현재 원광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 천산북로 : 실크로드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인 ‘북쪽 비단길’
<함께 나누기>
곤충학자로 입문하려면 가장 우선 관찰 대상자로 잡는 곤충이 바로 개미라 합니다. 일단 관찰하기 좋은 편이라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느릿느릿 기어가기에 살펴보기 좋고, 유리병에 흙과 개미를 넣으면 집 짓는 모습도 관찰 가능하고, 진딧물과 공생관계도 배우고.
꼭 학자가 아니라도 시골에 살면 개미를 관찰하게 됩니다. 다만 촌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개미를 무척 싫어합니다만. 밭 곳곳에 구멍을 뚫어 개미집을 만들고, 나무에 올라가 잘 익은 과일도 건드리고, 무심코 건드렸다간 물리고...
언젠가 한 번 인간의 길과 곤충인 개미의 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발자국을 남기고 그 발자국 따라 뒷사람이 거길 걸어가면서 길이 만들어집니다. 개미 역시 먹잇감을 발견하면 혼자 가져올 수 없기에 동료에게 알리려 돌아가며 길에다 페로몬을 뿌립니다. 그 페로몬을 따라 다시 먹잇감 있는 곳으로 가고.
사람은 자기 발자국을 깊게 남겨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 길로 가도록 만듭니다. 누군가 더 가지 않으면 길은 없어질 테지만. 그래서 편리를 위해 길을 넓히려 식물과 동물의 길인 자연의 길을 뭉개버립니다. 오직 인간만을 위한 길을 만들려고.
허나 개미의 페로몬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집니다. 만약 남아 있으면 큰일이지요. 동료에게 남긴 페로몬의 길이 여러 갈래가 되면 찾아가지 못하니까요. 개미뿐 아니라 여느 다른 곤충도 마찬가집니다. 지렁이가 다녀간 자국도, 쇠똥구리가 굴러간 길도 시간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딱 필요한 만큼 쓰고 없애는.
우리는 곤충 같은 존재를 미물(微物)이라 합니다. ‘인간에 비해 작고 보잘것없다’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오늘 시에는 그런 미물의 움직임을 보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곤충에게 배워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저 미물 / 잠시 충동적인 살의가 내 발꿈치에 머문다”
먹이를 문 개미 한 마리가 내 발밑을 지나갈 때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하여 기다렸다가 발길을 옮기시는가요? 개미는 사람이 발로 밟을지 멈출지 계산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일용할 양식을 갖고 제 가족을 먹일 생각으로 부지런히 작은 발을 움직일 뿐.
“그는 지금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게 아니다”
개미에게 먹잇감이 절구통만 할지 모르나 사람 눈에는 좁쌀 한 톨밖에 안 되는 크기이고, 사람 한 뼘 거리가 개미에겐 천산북로에 해당하는 먼 길입니다. 개미가 길을 가지만 그 길은 새로 만드는 길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길이요, 앞으로도 있을 길입니다. 사람처럼 편의에 의해 자연을 파괴하며 만드는 길이 아닌.
“누가 과연 미물인가 물음도 없이 / 그저 타박타박 화엄 세상을 건너갈 뿐이다”
작고 보잘것없기에 미물이라 하는데 언제나 고개 빳빳이 들지 않고 자신을 낮춰 기어가는 저 개미야말로 성인의 경지에 든 존재가 아닐까요? 인간이 두 발로 걸어다니게 되면서 만물의 으뜸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런 까닭인지 고개 빳빳이 쳐들고 으스대며 다니고. 그 으스댐의 절정은 인간만을 위한 길을 만드는, 아니 뚫는 일. 그에 비하면 엎드려 기어 다니는 개미는 오로지 양식을 들고 왔던 길로 되돌아갈 뿐.
“곤충들 짐승들 물고기들 / 모두 오체투지의 생애를 살다 가는 것이다 //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우리가 마음대로 짓밟는 곤충들. 그들은 꼿꼿이 고개 쳐들고 으스대며 사는 게 아니라 온몸을 땅에 붙이며 살다 갑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오지요. 이제 ‘개만도 못한’이란 말 대신 ‘개미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로 바꿔야 할지도.
이제 길을 갈 때 가끔씩 발아래도 살펴보시길. 혹 개미가 기어간다면 뛰어넘거나 아니면 기다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