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감시 터졌네 할배 X알 터졌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214편)

* 홍시 감시 터졌네 할배 X알 터졌네 *



가을 빛깔 가운데 가장 가을다움을 드러내 보여주는 색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리라. 단풍나무의 붉은빛, 은행나무의 노란빛, 잡목이 만들어내는 잡다한 빛, 바람에 한들한들 추는 코스모스의 현란한 빛...

나에게 물으면 바로 답이 나온다. ‘감빛’.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 매달린 빠알간 감처럼 가을빛을 대신할 만한 게 또 있을까. 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바로 이때가 황홀한 가을빛을 즐기기 최고다. 단감나무에 달린 붉은빛보다는 아무래도 시골길 가다 보는 토종감 홍시의 빛깔이 더 좋을 터.




4년 전 이맘때 홍시를 글감으로 산골일기를 한 편 올렸다. 그해 감이 해거리를 해서 딸 게 없다는 게 주된 내용. 정말 그랬다. 감나무에 감꽃이 피고 풋감이 달렸을 때만 해도 걱정 안 했다. 예년의 경험으로 보아 적어도 천 개쯤 거뜬히 열릴 조짐이었으니까.

헌데 가을이 깊어지면서 변화가 생겼다. 풋감이 채 익기도 전에 마구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래도 신경 안 썼다. 아직 많이 달려있으니까. 허 그런데... 아니었다. 그 뒤로 하나둘씩 떨어지는 게 아니라 후두둑후두둑 마치 우박 쏟아지듯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단 한 개도 남지 않았다.


보통 감나무에 감이 별로 없을 때도 ‘올해 감 왕창 말랐다’ 하는데 그래도 전보다 적게 열렸을 뿐 하나도, 단 한 개의 홍시도 달리지 않은 적 없었는데... 그런 내용의 글을 올리자 글벗님 두 분께서 감 한 상자씩 보내줬다. 사실 이웃에 얘기하면 얻을 데야 있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올해 우리 집 감은 풍년까지는 아니라도 ‘평년작’은 된다. 100년 넘은 감나무를 베어내야지 하면서도 거기 자리 잡은 능소화 때문에 남겨둔 보답을 하렴인가. 몇 년째 감꽃은 피어나나 감을 맺지 못하던 ‘백년감나무’에도 감이 제법 열렸다. 대충 세어보니 100개는 족히 될 듯.

집 뒤 두 그루에 달린 감을 보니 대충 300여 개. 그럼 400개가 넘는다. 홍시를 따먹어도 이백여 개는 곶감을 만들 수 있을 듯. 이제 할 일 하나만 남았다. 곶감 만들기 위해 토종감 깎아 베란다에 널기. 나나 아내는 잘 안 먹지만 만들어놓으면 손님 왔을 때 내놓기 딱 좋다.


고 황홀한 빛을 더 보고 싶지만 그냥 놔두면 홍시가 되어 땅바닥에 바로 내팽개질 터. 그것도 참 볼썽사납다. 멀리서 보면 꼭 핏물 같기도 한데다 땅에 떨어져 곤죽이 된 거기에 말벌이 한두 마리 달라붙어 있으니 무심코 건드렸다간 쏘이기 십상.




나는 기억력이 뛰어나지 못하다. 달리 말하면 건망증이 심한 편이다. 어떤 땐 내가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잘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아내가 종종 그런 기억력으로 교사 노릇한 게 용하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그 점은 나도 인정하는 면이기도 하다.

헌데 기억해야 할 건 잘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될 건 잘 기억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아주 어릴 때 부르던 노래다. 이제는 동요 범주에 넣기 곤란할 정도로 내용이 엽기적인데 지금도 술이 콧등까지 차오르면 한 번씩 흥얼거린다. 한 예로,

“엄마야 뒷집에 돼지붕알 삶더라,

좀 주더나 좀 주더라,

맛있더냐 맛없더라,

찌링내 꾸링내 나더라.”

이 노래 부르면 처음 들어본 사람은 기겁을 한다. 그럼 더욱 흥에 겨워 다음 노래까지 덧붙인다.




“홍시 감시 터졌네 할배 X알 터졌네”

이 노래마저 부르면 ‘저 사람이~’ 하는 표정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불행히도(?) 삼십 대까진 완창했던 노랫말 뒷부분을 잊어버려 이젠 끝까지 못 부르고 주구장창 ‘홍시 감시 터졌네 할배 X알 터졌네’만 반복한다.

이 노래를 주로 머스마들은 시차기(비석치기)할 때, 가시나들은 고무줄뛰기 할 때 불렀던 것 같은데... 다만 노랫말에 신경 써 듣다 보면 어떤 분은 내용의 심각성(?)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르겠다. 남자의 거시기가 나오니.




이런 노래가 어떻게 나왔을까 하고 찾아보니 ‘배경 설화’가 전하는데 제법 그럴 듯하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산골마을에 영감과 할머니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가을이 오자 다른 집에는 감이 주렁주렁 달렸지만 자기 집엔 감나무 한 그루 없어 따먹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고 자려 하니 속이 출출하여 잠이 안 와 할멈이 영감의 옆구리를 찌르며 옆집 홍시를 몇 개 따오라고 했다.

어두운 데다 들키면 창피당할까 봐 버텼지만 할멈의 보챔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영감이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는데... 할멈이 영감이 따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고 빨리 따고 갈 작정에 혹시나 하여 아래 놓인 집게로 훑으니 뭔가 걸리는 게 있어 힘껏 당겼다.


영감은 순간 너무 아팠지만 비명을 지르면 이웃집에서 들을까 봐 억지로 참고 있는데 할멈은 그것도 모르고 더 힘껏 잡아당겼다.




할멈은 그게 영감 X알인지도 모르고 자꾸만 잡아당겨도 영감은 아파 죽을 지경이지만 비명을 낼 수도 없고. 이렇게 한참 할멈이 당기는데 아뿔싸 뭔가가 얼굴에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 난 줄 몰랐고.

할멈이 그것을 입에 대어보니 썩은 냄새가 나 혼잣말로 "감이 썩었네" 하다가 "똥도 남의 똥은 구수하다더니 완전 거짓말이네"라고 덧붙였다. 먼저 방에 들어간 할멈이 할배가 똥 싸고 늦게 오는 줄 알고 기다렸더니 영감이 들어오자마자 아랠 움켜지고 방바닥을 뒹구는 게 아닌가.

그 꼴이 하도 우스워 할멈이 하는 말

“영감, 왜 그러시유? 어디 아파유?”

할배는 아파 제대로 말은 못하고 불알만 잡고 ‘X알 터졌어’ 하고 나뒹굴며 비명 지를 뿐.


그런 사고가 일어난 뒤 어떻게 퍼졌는지 온 마을사람이 다 알게 되고 이어서 우스개 노래가 나왔는데 그게 바로,

“홍시 감시 터졌네 할배 X알 터졌네”라고."




대개의 배경설화가 그러하듯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다. 당연히 할멈과 영감의 얘기는 사실이 아니리라. 허니 더욱 궁금하다. 노랫말을 두고 추측하건대 ‘홍시 감시 터졌네.’에서 홍시와 감시는 ‘시’라는 각운(시구 끝부분에 같은 음의 반복으로 생긴 운율)의 효과를 노렸음이 분명하다.

다음 '터졌네'도 끝부분에 다시 반복되니 각운과 관계있겠고. 허나 터질 게 많은데 하필 할배 거시기 터졌다 했을까? 혹 감나무가 잘 부러지니까 감 따러 올라갔다가 떨어져 다쳤다는 말인가. 그럼 다리가 부러졌다 하면 되지 하필 거시기가 터졌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단풍빛보다 먼저 달내마을을 붉게 물들이는 홍시를 떠올리면서, 그 옛날 불렀던 ‘홍시 감시 터졌네’ 노랫말을 되살려 보려 한다. 기억의 서랍이 좁아 되살릴 수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혹 어디선가 길을 가다가 ‘홍시 감시 터졌네’를 중얼거리며 군청색 잠바 차림으로 걷는 늙수그레한 사내가 보인다면 그냥 모른 척 지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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