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0편 : 나해철 시인의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 오늘은 나해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나해철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때로는 나란히 선 키 큰 나무가 되어
때로는 바위 그늘의 들꽃이 되어
또다시 겨울이 와서
온 산과 들이 비워진다 해도
여윈 얼굴 마주보며
빛나게 웃어라
두 그루 키 큰 나무의
하늘 쪽 끝머리마다
벌써 포근한 봄빛은 내려앉고
바위 그늘 속 어깨 기댄 들꽃의
땅 깊은 무릎 아래서
벌써 따뜻한 물은 흘러라
또다시 겨울이 와서
세월은 무정타고 말하여져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벌써 봄 향기 속에 있으니
여윈 얼굴로도 바라보며
빛나게 웃어라
- [아름다운 손](1993년)
#. 나해철 시인(1956년생) :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의대를 나와 현재 서울에서 [나해철 성형외과] 원장이며, 고향의 영산강을 글감으로 한 시를 많이 써 '영산강 시인'이란 별명을 얻음.
<함께 나누기>
요즘 세상이 참 살기 힘들다 합니다. 특히 소규모 자영업 등 사업하시는 분들은 다. 어떤 이는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합니다. 힘들 때 견뎌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버팀목은 사랑이겠지요. 가족의 사랑, 이웃의 사랑, 나라의 사랑...
오늘 시는 제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 암시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라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복수 표현에서 무정한 세파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으나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많으면 이겨낼 수 있다는 뜻으로.
“때로는 나란히 선 키 큰 나무가 되어 / 때로는 바위 그늘의 들꽃이 되어”
때로는 큰 나무가 되어 따가운 햇빛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그늘이 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바위 그늘에 숨어 피는 들꽃에게 땅 깊은 무릎 아래로 따뜻이 흐르는 물이 되어 수분을 공급해 준다면 그도 참 다행한 일이지요.
또다시 겨울이 찾아와 온 산에 잎이 지고 들판은 비워진다 해도 그 여윈 얼굴 속에서도 마주 보며 빛나게 웃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으로 이 긴긴 어둠을 이겨내면 그 힘이 영양분이 되어 비록 모진 겨울이라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또다시 겨울이 와서 / 세월은 무정타고 말하여져도 / 사랑하는 사람들은 / 벌써 봄 향기 속에 있으니”
봄여름 그리고 가을이 지나면 어김없이 혹독한 시련의 계절인 겨울이 옵니다. 그건 막을 수 없지요. 그러나 우리가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음은 이어서 봄이 오기 때문입니다. 싸늘히 식은 햇살에 온기를 담아 추위 녹이는 용광로의 불길로.
그리고 아무리 추위가 몰려와도 사랑이 있다면, 사랑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면, 비록 어두운 세상살이에 찌들고 여윈 얼굴이라도 서로를 바라보며 빛나게 웃을 수 있습니다.
한 편 더 덧붙입니다.
- 내 마음 쪽배 -
마음을 부수어
쪽배를 만듭니다
마지막 아름다운 기억 하나
떼내어 돛으로 답니다
거칠고 막막한 바다를
차라리 깃털처럼 가볍게 떠갑니다
텅 빈 쪽배가 슬픕니다만
그래도 저 끝까지 흔들리며 갑니다
*. 둘째 사진은 [제주환경일보](2018년 9월 18일)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