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1편 : 강성은 시인의 '죄와 벌'
@. 오늘은 강성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죄와 벌
강성은
좋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자꾸 나를 먼 곳에 옮겨 놓고 가버린다
나는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쌀을 씻고 두부를 썰다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 [Lo-fi](2018년)
#. 강성은 시인(1973년생) : 경북 의성 출신으로 2005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 ‘초현실적 상상력으로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인’이라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우리는 성격이 아주 온순해 어떤 누구에게든 비위를 잘 맞춰 주는 사람을 흔히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 합니다. 뼈는 날카롭기에 그런 뼈가 없으니 남들이 대하기 편하다는 말이니,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을 잘하고 타의 모범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이렇게 '좋은 사람'은 누구나 다 호감을 느껴야 하건만 뜻밖에 비판하는 이들도 꽤 된답니다. 즉 자기 줏대가 뚜렷하지 않아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 하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상황 판단을 못 내려 보는 이를 답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좋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 자꾸 나를 먼 곳에 옮겨 놓고 가버린다"
좋은 사람들이 나를 버립니다. 그럼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왜 화자가 나쁜 사람인지는 나와 있지 않아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좋은 사람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을 버렸다면? 즉 내가 좋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짓을 했다면?
잠시 중세로 돌아갑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라는 소위 천동설 대세의 분위기에서,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도는 천체 중 하나다'라는 지동설을 지지합니다.
이때 천동설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대다수로 좋은 사람이 되나, 지동설을 지지한 갈릴레이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때 그가 선택할 길은 두 가지였죠. 좋은 사람 편에 서느냐 나쁜 사람이 되느냐. 결국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일화를 우린 잘 압니다.
“나는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 /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좋은 사람들에게 버려진 나는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흙을 툭툭 털고’는 어떤 때 쓰는 표현입니까? 보통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할 때 쓰는 표현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는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또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좋은 사람을 생각하며’는 어떤 뜻으로 한 말일까요?
나의 행위가 비록 좋은 사람들을 거스를지언정 나의 뜻을 버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새겨봅니다. 특히 뒤에 세 번이나 ‘생각한다’의 반복에서. 쌀을 씻고 숟가락을 들고 잠자리에 눕는 등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면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봅니다. 그 좋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생각하는지도...
“생각한다 / 생각한다 //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나를 버린 행위, 아니 어쩌면 내가 좋은 사람을 버리도록 만든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봅니다. 뭔가 뚜렷이 잡히진 않아도 이것 하나만은 아시겠지요? 나는 비록 좋은 사람들에게 욕을 들어먹을지언정 그들의 뜻에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제목이 ‘죄와 벌’임을 그러면 조금 이해가 될 겁니다. 다수를 따르지 않음은 분명 죄이면서 벌을 받아야 할 일입니다. 허나 내가 옳다고 여기면 비록 다수에게 욕 들어 먹더라도 할 말을 하고 할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혹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일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비록 좋은 사람들에게 밉보일지언정. 그럴 때 나는 나의 길로 가렵니다. 내 의지가 담긴 길로.
몇몇 평론가의 해설을 봤는데 저와는 전혀 방향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말하지요. 제 해설은 그저 참고만 하라고.
*. 인물 사진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이며,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