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놀갱이는 어디로?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2)

* 그 놀갱이는 어디로? *



이곳 달내마을로 이사 온 그 해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저녁때 울산 시내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 큰일 났어요!”

“왜 무슨 일 있어?”

혼자 집을 보기에 진짜 무슨 큰일이 생긴 줄 알고 긴장한 채 물었다.


“아 글쎄… 노… 노루가…”

말을 제대로 잊지 못하기에 아내를 진정시키고자 하는데 이내,

“노루가... 지금 마루... 마루 바로 아래... 있어요.” 하는 게 아닌가.

‘노루가 마루 아래 있다니?’

처음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산에 사는 노루가 혹 들에서 논다거나, 집 뒤 숲 속에서 바스락거린다면 모를까, 어떻게 노루가 마루 아래 있다는 말인가.



다음은 잔뜩 겁에 질렸음을 짐작케 하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로부터 띄엄띄엄 들은 내용을 정리해 본다.


아내 혼자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태백이(풍산개)가 마구 짖기에 아랫길로 누가 지나가나 했다. 그런데 짓는 소리가 여느 때완 달라 귀 기울이니 제 친구가 오면 반가이 맞이하는 바로 그 소리를 닮았다.

아무래도 박사장 댁 진돗개인 듯싶었다. 그 녀석은 수컷이라 풀어놓기만 하면 어여쁜 아가씨(?)가 둘이나 있는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러면 태백이와 강산이(태백이 새끼)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고... 그러나 우리는 싫다. 얌전한 규수를 꼬시려 드는 난봉꾼 같아서.


내쫓으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정말 개처럼 생긴 녀석이 현관 바로 아래 계단에 웅크리고 있더란다. 그러나 개가 아니라 노루였고. 나와 함께 산책할 때나 차 몰고 오갈 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던지라 한눈에 노루임을 알 수 있었다나.

노루가 사람을 해치진 않지만 바로 눈앞에 나타나 달아나지도 않고 멀뚱히 바라보는데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내가 기겁을 하여 들어갔고 내게 바로 전화를 했던 것이다. 물론 오늘 모임 있음을 알면서도 얼떨결에 생각난 사람이 나였을 테고...




아내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기를 기다려 모임이 아직 끝나지 않아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아래 사는 가음댁 어르신께 말씀드려 보라고 했다.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앞장서 해결해 주시는 우리랑 가장 친하게 지내는 어르신이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전화하라고 했다.


모임 중에도 걱정이 돼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다가 집에 와 부리나케 문을 열자마자 물었다.

“어찌 됐어?”

“어르신이 오셔서 내쫓았어요. 그런데…”

하며 말끝을 흐리는 품이 어쩐지 반가움보다 안쓰러움이 담긴 것 같아 다시 물었다.

“왜?”

“아무래도 잘못 쫓아낸 것 같아요.”


이어지는 아내의 말이다.


어르신이 오시기에 몽둥이로 때려잡나 했더니 집에 들어온 짐승은 해치는 게 아니라면서 노루를 보며 지팡이로 댓돌을 톡톡 치며 이렇게 말을 하시더란다.

“이놈아, 여기 니가 올 곳이 아닌데 와 왔노?”

그래도 움직임이 없자,

“빨리 니 집으로 가야지 여기 있으면 큰일 난다!”

제법 힘주어 하는 말에 그제야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가더란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으리라. 노루가 사람을 보고도 꿈쩍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저를 보고 꾸짖자 그제사 물러났다는 말이.


헌데 어른의 입에서 이어진 말이 아내의 가슴을 할퀴고 말았다.

“아무래도 새끼 밴 것 같은데…”

그 말에 아내도 가만 생각해보니 걸어가는 뒷모습이 좀 뒤뚱뒤뚱 거리더란다. 때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새끼 낳을 곳을 찾던 차 마땅한 곳이 눈에 안 띄고 해서 발을 옮기다가 우리 집 현관 앞까지 오게 된 게 아닌가 하는.

그렇게 다급했기에 개가 짖어도, 사람이 와도 물러가지 않고 억지로 버텼으리라는 게 어르신의 말이었다. 하기야 마루 아래면 비를 피할 수 있고 마침 헌 이불 처리하지 못해 쌓아두기도 했으니 한데보다는 훨씬 따뜻했으리라. 그래도….




가만 생각해 본다. 노루가 왜 하필 우리 집 마루로 들어왔을까. 그러고 보니 집 짓기 전엔 밭이었고, 더 이전에는 산이었다. 그러니 그곳은 노루의 터전이나 마찬가지였을 터. 그걸 전주인은 들깨 심느라 밭으로 만들었고, 나는 그곳에 집을 지었으니...

혹 어미가 된 노루는 자기가 태어났던 그 터전에 와 새끼를 낳고 싶었을까. 아니면 설마 우리가 저를 보호해 주려나 해서? 이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야생동물은 사람을 무조건 무서워하는데... 왜 왔을까? 정말 궁금하다.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전과 달리 아내가 바깥까지 배웅하려 나온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 대신 아내의 눈길은 사방을 훑어보고 있다. 아마도 어제의 그 노루를 찾는 듯. 달내마을 터줏대감인 임신부 놀갱이는 어디로 갔을까? 비 오는 밤에 새끼는 무사히 낳았을까? 십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짠하다.


*. 그림은 아내의 말을 들은 아는 이가 그려줬습니다.

*. '놀갱이'는 경상도에서도 몇몇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노루'의 사투리입니다.

*. ‘달내마을’은 달이 비치면 달그림자가 냇물을 따라 흘러가는 마을이란 뜻입니다.


keyword
이전 01화할머니와 까치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