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1)
까치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吉鳥)에서 애물단지로 변한 건 이미 오래 전이다.
한전에선 한때 까치를 정전 사고의 원흉으로 지목하여 전봇대 위 까치집을 신고만 해도 상금을 주었다. 또 까치 개체수를 줄이려 500여 명의 포획단을 둬 한 해 20만 마리를 포획하거나 사살했는데, 한 마리 당 6,000원의 포상금을 주기도 했고.
한전뿐 아니라 시골 사람도 까치가 싫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선 오디(뽕나무 열매) 수확할 때면 짜증이 난다. 오디 따먹는 거야 저희들 생존을 위한 양식이라 이해하지만, 오디 먹는다고 이 가지 저 가지 옮겨다니며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그게 받쳐 둔그물 위로 떨어지거나 똥을 싸니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집 아래 사시는 가음댁 할머니에 비할 바 아니다.
<제1차 대전>
얼마 전 할머니가 완두콩을 심었다. 콩을 땅에 묻히도록 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때는 별일 없다. 그런데 보름쯤 지나 떡잎이 나오면서부터 서서히 전쟁의 막이 오른다.
떡잎이 흙을 밀고 설핏 드러나면 덜 삭은 콩대가리도 함께 나온다. 그러면 까치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어느 새 콩밭으로 모여든다. 그때부터 할머니와 까치 사이에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 할머니의 무기는 우렁찬(?) 목소리다. "후여! 후여!" "야, 이 떼끼! 떼끼 놈들아!" 하며 까치를 향하여 소리친다. 까치는 화가 실린 목소리에 겁을 먹고 달아나나 새대가리라는 말 그대로 10초도 안 돼 이내 완두콩에 달려든다.
두 번째 할머니의 무기는 작은 돌멩이다. 이 방법은 목청보다는 확실히 효과 있다. 근처에 돌멩이가 날아가기만 해도 멀리 도망가 한동안 오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 무기의 치명적인 맹점은 던지기 적당한 작은 돌이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까치 쫓으려 늘 붙어 있을 수 없다는 점.
세 번째 무기는 다 찌그러진 냄비다. 어떨 땐 누가 버린 분유통도 쓴다. 나무막대기로 두들기면 꽤나 소리가 크다. 또 탄알(?)이 떨어질 염려 없이 반영구적이니 마음껏 두드리면 되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서일까? 쉼 없이 헌 냄비를 두들길 때 할머니가 내뱉는 말에서 패배자의 아픔이 드러난다.
“야 이놈들아, 쪼매이만 묵고 가라. 제발 쪼매이만 묵고 가거래이.”
조금 먹는 건 허락해주겠으나 완전히 콩밭을 작살내지 말아달라는 말. 애절함이 잔뜩 밴 말이건만 새들이 어찌 염치를 알랴.
일주일 가까이 매일 녀석들과 싸우던 할머니가 하루는 녀석들에게 엄청난 공갈 협박(?)을 했다. 우리 집 감나무 위에 둥지 튼 까치집을 올려다보며,
“야 이놈들아, 너거가 정 그라몬 내가 너거 집 뿌사삘끼다.”
녀석들이 거진 콩밭을 작살냈는데도 까치집이 아직 멀쩡한 걸 보면 이번 전쟁은 할머니의 완패임이 분명하다.
<제2차 대전>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가 블루베리 댓 그루 심어놓았는데, 3년이 지나면서 수확할 때가 되니 다시 까치와 맞짱 뜰 일이 또 생겨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까치뿐 아니라 참새처럼 작은 새도 환장하고 달려든다. 그걸 보면서 나는 한 가지는 확신했다. 새들이 저만큼 밝힌다는 건 블루베리가 그만큼 맛있는 과일이라고.
할머니는 완두콩에선 완패한 경험이 있기에 새를 쫓아내는 방법에서 방향을 틀었다. 어차피 그 방법으론 감당할 수 없으니 말이다. 새로 택한 길은 내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묘책이었다.
‘새들이 아예 따먹지 못하도록 그물을 친다.’
물론 이 방법은 수확하려면 일일이 그물을 걷고 다시 덮는 귀찮음이야 따르지만 수확량 확보에는 안성맞춤.
할머니가 그물 치는 걸 보면서 나는 이번 전쟁은 아무래도 할머니의 완승으로 끝날 듯싶었다. 그물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으니까. 헌데 어느 날 익은 블루베리를 거두고 난 뒤 깜빡 잊고는 그물을 덮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 까치들과 다른 새들의 만찬이 펼쳐짐은 너무나 당연한 일.
블루베리가 한 번에 다 익지 않음이 천만다행이랄까. 그 뒤로는 잊지 않고 그물을 덮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뒤 밭에서 "아이고!" 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였다.
사연인즉, 그물을 덮어놓았는데 한 곳이 살짝 들렸던가 보다. 그 사이로 까치 한 마리가 비집고 들어가 실컷 먹고는 나오려 했다. 들어갈 때보다 빠져나오기 힘들었든지 안에서 그물을 이리저리 휘젓다 보니 빈틈이 여러 군데 생겼고... 그 덕에 새들은 또 파티를 즐겼고...
<휴전 그리고 배려>
작년 겨울이다. 눈이 많이 내렸다. 내가 사는 달내마을은 산골이다 보니 눈이 잔뜩 쌓일 때가 종종이다. 그럴 때면 겨울잠을 자지 않는 동물들은 먹이 구함에 막막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까치다. 눈이라도 안 쌓였더라면 논밭을 뒤지면 뭐라도 나올 텐데 온통 눈으로 덮여 있으니 굶을 수밖에 없다.
맨땅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이 가득 쌓인 지 닷새쯤 되던 날 할머니께서 나를 찾아왔다.
"선상님, 쟈들 안 굶어죽겠능교?"
감나무의 까치집을 가리키자 나도 비로소 저 녀석들이 뭘 먹고살지 하는데 미쳤다.
"저놈들이 굶어 죽어야 할머니가 덜 힘들 텐데요." 하자,
"밉기로야 한정 없이 밉지만 우짭니꺼. 우리만 밥 묵응께 맴이 안 편네요." 하시곤 한참이나 까치집을 올려다보곤 내려가셨다.
그날 오후, 할머니 말이 생각 나 베니어판을 마당 한가운데 놓고는 거기에 쌀과 콩과 좁쌀 등의 새 모이를 좀 갖다 놓았다. 얼마 안 있어 한 마리가 내려와 콕콕 쪼아보더니 안심한 모양인지 맛있게 먹자 이내 까치들이 다 내려와 달려들었고.
다음날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아이구 마, 잘했심니더!" 하시는데 솔직히 나는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아직도 판단이 안 선다. 나에겐 적(敵)은 적이고 아군(我軍)은 아군이다.
한번 적은 영원히 적이니 그가 망하기를 바랄지언정 부활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할머니에겐 아니다. 적이라도 위기에 처할 땐 내편이다. 즉 도와줄 존재다.
이것이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손잡을 땐 손잡아줘야 한다. 나보다 덜 배워 지식이 짧으나, 이미 공존의 의미를 먼저 깨친 분이다. 그래서 부끄럽고, 한편 또 고맙다. 어디서 이런 가르침을 얻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