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6)
아직도 밭에 가면 거둘 농산물 있음이 얼마나 다행이랴. 아삭이고추도 심심치 않게 달리고, 필요할 때마다 뜯어먹을 수 있을 만큼 상추도 정구지도 한쪽에 자란다. 그래도 이맘때 수확물 가운덴 뭐니 뭐니 해도 고구마를 따라갈 게 없다. 올해는 비가 자주 와 작황이 시원찮지만 그래도 먹을 만큼은 나왔다. 우리 집 고구마는 세 번 나눠 심었는데 그 간격이 열흘쯤 되는지라 거둬들인 곳도, 아직 그대로인 곳도 있다.
그저께 열흘 전에 수확한 고구마를 꺼내 씻었다. 고구마는 주먹만 한 굵기가 먹기 가장 적당한데, 아주 굵은 녀석 몇 개 빼고는 달걀 한 개 크기 만한 잘디 잔 녀석들뿐이다. 아내는 고구마를 무척 좋아한다. 내가 아침엔 떡국, 점심엔 김밥을 일 년 내내 먹어도 물리지 않듯이 아내 역시 고구마와 옥수수면 버틴다고 장담하니. 보통 고구마와 옥수수는 주식이 아니라 간식거리로 쓰지만 아내에겐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잔 고구마라도 버리지 않는다. 게다가 고구마는 겨울에 찾아오는 손님 대접할 때 그저 그만 아닌가. 홍시와 고구마를 내놓으면 다른 과일이나 음식이 필요 없을 터. 손님뿐 아니라 당장 군것질거리로 고구마보다 더 좋은 게 있으랴.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밥에 넣어 먹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삶아온 고구마 껍질을 벗겨가며 먹는 맛. 아궁이에 불 지피며 짬짬이 살펴가며 구운 고구마를 먹는 맛. 밥 속에 잘 익은 누런 고구마를 향해 전진 후퇴를 거듭하는 숟가락. 썰어 튀긴 고구마에 물엿을 졸여 만든 시럽을 입힌 맛탕을 향한 삼지창.
그러나 그저께 고구마를 씻은 건 구워 먹거나 삶아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빼떼기'와 '쫄떼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빼떼기'는 날고구마를 무 자르듯 얇게 비스듬히 잘라 가을 햇볕에 바짝 말린 걸 일컫는다. '빼떼기'란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그게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말이나 중국말인가 하고 갸우뚱하는데 경상도 말(사투리가 아닌)이다. 아니 제주도에 가서도 들었으니 순수 경상도 말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있으나, 그래도 '빼떼기죽'이 가장 유명한 곳 하면 바로 경남 통영 아닌가.
이전에 한 번이라도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진을 보자마자 '아 그거…' 하며 고개를 끄덕이리라. 이 빼떼기는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섬 지역이나 서부 경남에서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주요 군것질거리이면서 죽으로 만들어 먹을 때는 한 끼 식사였다.
이제 가만 생각해보면 빼떼기를 많이 먹었던 곳은 고구마 외에 다른 작물을 심기 힘든 섬이나 유독 고구마가 잘 자라는 지역이 틀림없다. 거기 사람들에게 고구마는 주식이었으니 보관할 방법을 찾느라 무진 애를 썼으리라.
자칫하면 썩거나, 곰팡이가 피거나, 쥐의 입 속으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래서 낸 꾀가 고구마를 썰어 말린 상태로 보관하는 방법이었으리라. 이렇게 만든 빼떼기는 겨울을 넘기는 훌륭한 양식이 되었고, 그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겐 고향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현재는 고구마의 종류를 어떻게 나누는지 잘 모르지만 나 어릴 때는 '타박고구마'와 '물고구마'뿐이었다. 그중에 타박고구마를 말리면 빼떼기가 되지만, 물고구마를 바로 말리면 그 풍부한 물기 때문에 쪼그라들어 볼썽사납게 된다.
우리 어른들은 그걸 극복하려고 꾀를 내 물고구마는 썰어 말리지 않고 삶아 말렸다. 이땐 완전히 말려선 안 되며, 수분이 조금 남은 까들까들한 상태여야 한다. 이렇게 물고구마를 삶아 뭉텅뭉텅 썰어 말린 걸 '쫄떼기'라 한다. 그러니 생고구마 썬 것은 '빼떼기', 삶은 고구마 썬 것은 '쫄떼기'
이 쫄떼기의 맛은 빼떼기와 다르다. 빼떼기의 매력이 구수함에 있다면, 쫄떼기의 매력은 달큼함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빼떼기는 알아도 쫄떼기는 모르는 이가 많다. 아니 사실 쫄떼기란 말을 아는 이는 많다. 그러나 이때의 쫄떼기는 '쫄따구'의 변형으로 군대에서 '졸병'을 가리키는 은어로 알고 있거나, 옛날 문방구점에서 아이들에게 불티나게 팔리던 불량과자인 '쫀득이'의 딴말로 알고 있을 뿐.
혼자 씻어 칼로 자르고, 삶고, 말리며 싱글벙글하는 모습에 아내가 '또 병 도졌네!' 하는 눈길을 보낸다. 그래도 좋다. 시골로 이사 오기 전 도시 살 때도 해마다 겨울 길목에는 늘상 이 짓(?)을 했으니 말이다. 이제 며칠 뒤면 빼떼기와 쫄떼기가 완제품이 돼 거실 쟁반에 담길 것이다. 그러면 심심할 때마다 손이 갈 게고. 지금 바로 눈앞의 쟁반에 빼떼기 쫄떼기가 놓인 듯하여 나는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빼떼기’와 ‘쫄떼기’는 국어사전에 실린 말이 아니지만 사투리도 아닙니다. 나중에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게 되면 언젠가 실리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