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7)
“니는 머하노!" "니는 머하노!”
아침부터 ‘머하노 새’가 와서 울어댄다. 요즘 ‘머하노 새’는 하루도 빠짐없이 방문하여 창을 흔든다.
달내마을의 새벽을 깨우는 소리가 셋 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경운기 소리’와 논둑밭둑에서 들려오는 ‘예초기 소리’, 그리고 ‘새 울음소리’. 경운기와 예초기 소리는 참 듣기 싫다.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농사에 꼭 필요한 게 바로 그 둘인데 ...
그래도 만약 새소리가 없다면 나는 벌써 도시로 귀환했을 게다. 그만큼 새소리는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요즘(4월 말)은 잘 아는 새소리, 뻐꾸기와 꾀꼬리가 우는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 대신 이름 모를 새소리가 자주 들린다.
이름 모를 새란 표현이 부끄러워 들리는 족족 그 소리를 적어보았다. 어딘가에 몰두하는 그 순간이 마냥 즐겁기에.
"후두둑 후두둑", "호로롱 호로롱", "쑤꾹 쑤꾹",
"삐쭈 삐쭈", "삐요 삐요", "삐비 삐비",
"찌이 찌이 찌이", "찌리 찌리 찌" “위쯔 위쯔 위쯔”
그런데 이렇게 소리를 적어놓았다가 다음날이면 바꿔야했다. 아무리 신경 써서 들어도 다르게 들리니 말이다. 그제사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생각났다. 바로 ‘음성’과 ‘음향’의 차이를 모르고 덤볐으니… 수업 시간에 음성과 음향의 차이를 새 울음소리로 비교해 설명했건만 분필 놓은 지 몇 년 됐다고… 이제 몇 년 더 지나면 내가 국어교사였다는 것조차 잊어버릴까 은근히 두렵다.
‘음성’은 사람이 내는 소리를 말하며, ‘음향’은 사람 아닌 모든 동식물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가리킨다. 쉽게 얘기하면 사람이 입으로 “뻐꾹” “뻐꾹” 하면 그 소리는 음성이요, 뻐꾸기가 직접 지저귀는 소리는 음향이 된다.
그럼 이 둘의 차이는? 사람의 음성은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적을 수 있다. ‘뻐꾹’은 ‘ㅃ + ㅓ, ㄲ + ㅜ + ㄱ’으로. 그러나 뻐꾸기가 직접 내는 소리는 그렇게 적을 수 없다. 아니 우리가 “뻐꾹 뻐꾹” 운다고 해서 ‘뻐꾸기’라 했는데 실제로 들어보라, 꼭 그렇게 들리는지.
교직에 있을 때 근무하던 학교에서 학년 초에 꼭 가정방문을 했다. 자기 집 방문을 반기는 애는 거의 없다. 부유하고 가난하고의 차이 없이. 이래도 저래도 자존심에 상처 입는 듯. 그때 이런 제안을 했다. ‘너희들 집 방문을 끝내면, 선생님 집 방문할 기회를 주겠다.’라고.
어느 해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마침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실제로 자기 귀에 들리는 소리 그대로 글로 적어보라고 했다. 나는 대부분 ‘뻐꾹 뻐꾹’이라 적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적은 애보다 그렇지 않게 적은 애가 더 많았다.
“뽀꾹 뽀꾹”, “워꾹 워꾹”, “홀쭉 홀쭉”, “오꾸 오꾸”, “갖고 갖고”, “까꿍 까꿍”, “할켜 할켜” 등 .
이렇게 달리 들리는 까닭은 하나의 소리로 규정할 수 없는 음향의 특징 때문이다. 하기야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뻐꾸기 소리를 ‘cuckoo’라 하지 않은가.
다른 소리는 대충 들으면 그렇게 들릴 듯도 싶었으나, “할켜 할켜”는 너무 이상하여 그렇게 적은 녀석에게 확인했더니 제 귀에는 정말 그렇게 들린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곁의 녀석이 한 마디 했다. “선생님, 쟤 어제 학교에서 여자애랑 싸워서 얼굴 할켰어요. 그래서 그리 들렸을 거예요.”
이렇게 새 소리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린다. 그런데 사람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도 날마다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어제는 “뻐꾹 뻐꾹” 한 것 같은데, 오늘은 “까꿍 까꿍” 하고 들린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새는 어제의 새가 아니요, 내일의 새도 아니다.
요즘 무슨 새인지 이름은 모르나, “니는 머하노, 니는 머하노” 하며 우는 새소리에 푹 빠져 있다. 녀석이 “니는 머하노? 니는 머하노?” 하면 내가 되돌려준다. “니는 머하노? 니는 머하노?” 하고. 제 말을 따라하자 녀석이 약 오르는지 소리를 좀 높이며 “니는 머하노? 니는 머하노?” 한다. 거기에 나도 소리를 좀 높여 “니는 머하노? 니는 머하노?” 했다. 그러자 기분 나쁜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번에 내가 소리를 바꿨다. “나는 고프다. 나는 고프다” 하자 저쪽에서도 무슨 소리를 내는데, “머가 고프노? 머가 고프노?” 하는 소리로 들린다. 답으로 “맘도 고프고 배도 고프다” 해주자, “많이 고프나? 많이 고프나?” 한다. 아마도 누군가 이 모습을 봤으면 머리 위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으리라.
한때 ‘열린 마음’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정말 이제는 동물에게도 마음을 열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집 태백이(풍산개) 곁을 그냥 지나칠 때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지나칠 때는 확연히 달랐다. 그냥 지나치면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 뿐인데 이름을 부르면 팔딱팔딱 뛰어오르며 달려든다.
새도 그렇지 않을까. 제 소리에 답해주면 더 신나게 지저귀지 않을까. 흔히 머리 나쁜 사람을 비하하여 ‘새대가리’라 한다. 그만큼 새가 기억력 없고 둔하다는 뜻이리라. 그런 새가 나와의, 사람과의 대화에 응하다니. 새가 이제 나에게 마음을 연 것처럼 보인다. 그럼 내가 더 활짝 마음을 더 열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