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23)

제423편 : 백창우 시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 오늘은 백창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백창우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나비처럼, 딱새의 고운 깃털처럼 가벼워져
모든 길 위를 소리 없이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내 안에 뭐가 있기에
나는 이렇게 무거운가
버릴 것 다 버리고 나면
잊을 것 다 잊고 나면
나 가벼워질까
아무 때나 혼자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사는 게 고단하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내가 한 걸음 내딛으면 세상은 두 걸음 달아난다
부지런히 달려가도 따라잡지 못한다
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안개처럼, 바람의 낮은 노래처럼 가벼워져
길이 끝나는 데까지 가 봤으면 좋겠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1996년)

#. 백창우 시인(1960년생) : 경기도 의정부시 출신으로 정식으로 문학과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가수로 작사 작곡가로,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을 ‘노래운동가’라 불러달라고 함.




<함께 나누기>

재주가 너무 많다 보면 한 분야 한 분야가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아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백창우 시인이 그렇습니다. 스스로 시인보다는 '노래운동가'로 소개하니 아무래도 노래의 작사 작곡 분야에서 좀 더 이름이 알려졌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로 가수 임희숙이 부른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와, 노래마을의 '나이 서른에 우린', 안치환의 '겨울새' 이 셋은 작사 작곡을 겸했고,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정호승 시)와, 정태춘의 '보리피리'(한하운 시)는 작곡만 했고, 김원중의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는 작사만 했습니다.

시인 소개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까닭을 위 시 읽으신 분은 눈치챘을 겁니다. 바로 시를 노랫말로 바꿔도 됨직한. 먼저 시 제목을 듣는 순간 어디서 본 듯하지요. 맞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벼움’ 대신 ‘무거움’으로 바꿔 패러디했으니.
앞에서 언급했습니다만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겁니다. 문득 중견시인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나는 어렵게 시 쓰는 시인을 보면 욕을 퍼붓고 싶다" 좀 극단적이지만 어려운 시를 쓰게 되면서 시 독자가 사라졌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감성에 호소하는 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 시를 해설의 편의상 둘로 나누면 앞부분과 뒷부분은 차이가 납니다. 앞부분(처음 ~ 9행)은 가볍게 살고 싶은 바람을 드러냈다면, 뒷부분(10행 ~ 끝)은 가볍게 살지 못하고 무겁게 사는 까닭이니까요. 그럼 왜 화자는 무거운 삶 대신 가벼운 삶을 바랄까요? 다음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나비처럼, 딱새의 고운 깃털처럼 가벼워져 모든 길 위를 소리 없이 날아다녔으면 하는 소망과 가벼워져 아무 때나 혼자 길을 나서고 싶은 소망. 그렇지요. 아마 대부분 먼 나라로 여행 다니고픈 꿈을 가지고 계시겠죠. 왜 우리는 여행을 꿈꿀까요? 바로 현재의 찌든 삶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다니려고.

다음은 가볍게 살지 못하고 무겁게 사는 까닭은 왜일까요? 아래 시행에 답이 보입니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나면 / 잊을 것 다 잊고 나면 / 나 가벼워질까"
그러니까 버릴 것 다 버리지 못하고 잊을 것 다 잊지 못하니 무겁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욕심 자만심 이기심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고, 또 과거의 영예 같은 것에 대한 미련을 끊어야 가벼워지건만.

"사는 게 고단하다 /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사는 게 고단함은 내가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큰 바윗덩이 하나 들어앉은 듯이 무겁습니다. 무슨 욕심, 바람, 원망이 이리 많은지...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나비처럼, 곤줄박이의 부드런 깃털처럼, 가벼운 입김에도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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