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94)
<하나>
요즘 파크골프장에 다닌다. 작년 말에 배운 뒤 올봄에 잠깐, 그리고 한참 쉬다가 다시 채를 잡았다. 짬이 많이 생겨서. 다른 곳은 어떨지 몰라도 이곳은 참가비 5천 원만 내면 5천 원짜리 식사 쿠폰을 주니 돈이 들지 않는다. 아 물론 차 기름값이야 들지만.
파크골프를 하면 다른 좋은 점은 몰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치는 3시간 정도는 거기 푹 빠져 잡념을 가지지 않으니까. 한곳에 집중하는 일이 드문 이즈음 내겐 아주 안성맞춤인 놀이다. 어떤 이는 운동된다고 하나 일단 땀이 안 흐르니 그건 아닌 듯.
얼마 전 라운딩 중에 일행 한 분이 첫타에 멋지게 홀컵 바로 곁에 갖다 붙였다. 파4홀이니 평소 그의 실력으로 ‘이글’이 확실하다. 저도 모르게 내뱉았다.
"야, 공이 기막히게 굴러갔네요."
그는 예상대로 '이글'을 성공한 뒤 내 귀에 대고 살짝 이리 말했다.
"이왕이면 공이 잘 굴러갔다 대신 공을 잘 쳤다로 해주셨으면..."
순간 얼굴이 '화끈!' 했다. '공이 잘 굴러갔다'와 '공을 잘 쳤다'는 엄연히 다르다. 국어교사가 그 차이를 잊다니. '공이 잘 굴러갔다' 주인공(주체)은 ‘공’이 된다. 그러니 달리 말하면 공이 운 좋게 그리로 잘 갔다는 뜻이니 말한 의도와 상관없이 좀 불쾌할 수 있다.
허나 공을 잘 쳤다 하면 주인공은 ‘친 사람’이 된다. 그러면 그의 실력이 뛰어남을 인정해 줌이니 기분 좋을 터. 그는 일반 골프 구력이 20년 넘는다 하니 비록 파크골프라 하더라도 골프 칠 때의 에티켓을 내게 가르쳐주려 함일 터.
그 말을 들은 뒤부터 ‘공이 잘 굴러갔다’란 표현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둘>
오래전 일이다.
아는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술 취하면 꼭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처음엔 사양했으나 막무가내 이끄는 바람에 따라갔는데. 그의 아내는 그런 일이 한두 번 아닌 듯 반가이(?) 맞아줬으나 문제는 자는 중학생 딸을 꼭 깨워 인사시키는 거였다. 내가 교사라서 그랬는지도.
자기 아빠 성화에 눈 비비며 억지로 앉은 딸애를 보니 미안하기도 하여 한마디 했다.
"내가 근무하는 여중에서도 너보다 더 이쁜 애를 본 적이 없구나."
처음엔 무슨 말인지 멀뚱멀뚱하다가 의미를 알아채곤 입이 확 벌어지며,
"고맙습니다!"
그 뒤 그 집을 아무리 한밤중에 방문해도 그 소녀는 내게 와 웃으며 깍듯이 큰소리로 인사했다.
남의 딸을 이쁘다고 해도 이렇게 늘 성공만 하는 게 아니었다.
동료에게 딸이 둘 있고 어릴 때부터 한 아파트에 살아 아는 사이였는데, 언니는 참 예뻤으나 한배 태생이 아닌 듯이 동생은 좀 쳐졌다. 그 집이 이사 가고 몇 년 뒤 우연히 시내 음식점에서 만나 인사 나누다 동생을 보니 너무 변해 언니의 미모랑 차이가 없었다.
무심코 내 입에서 나온 말,
"아이구 OO, 이제 너무 이뻐졌네."
그 동료가 대뜸 받아,
"이제 이뻐졌다는 말은 예전에 안 예뻤다는 말이지요?"
갑자기 받아친 질문에 농담이라 여기고 넘어갔는데, 돌아오다 아내 얘기를 들으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오랫동안 보는 이들마다 두 딸을 두고 드러내놓고 하진 않았으나 뒤로 첫딸과 둘째딸 비교하는 얘기가 들려와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 한다. 허니 내가 무심코 한 말이지만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나도 실수를 하긴 했다. ‘이제’라는 말을 넣지 않았어야 했는데.
<셋>
친구의 친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오래전 아주 친한 벗을 통해 한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나랑 나이도 같고 대학도 같아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다. 어느 날 보니 그의 귀밑에 뭔가 혹처럼 불룩 솟아 있는 게 아닌가. 그건 이미 내가 경험해봤던 병인지라 도와준답시고 그에게 말했다.
“너 그것 후두임파선결핵염이야. 나도 앓아봐서 잘 알아. 안 고치면 좋지 않다고 하던데.”
그러자 그가 받았다.
“아니 너는 전에도 똑같은 얘길 하더니... 남 아픈 걸 두 번이나 지적하면 넌 기분 좋겠니?”
인상까지 써가며 ‘전에도 얘길 했다’라는 말에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들은 사람이 두 번째라 하니 할 수 없이 사과하고 끝냈다. 그리고 일 년 뒤 그는 하늘로 갔다. 그 병 때문에 그리된 것 같진 않으나 괜한 말을 한 바람에 그의 삶에 영향 준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한동안 사로잡혔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보는 이마다 “살 빠졌네.” 하는 말.
그 말을 하도 자주 들어 늘 만나는 이 아니라면 누가 좋은 곳에서 고급 식사 대접하겠다고 해도, 혹 강의 신청을 해도 물리친다. 몸무게는 몇 년째 그냥 그대로지만 작년부터 보는 이들 눈에 살이 빠진 것처럼 보여선지 다들 ‘살 빠졌다’란 말을 입에 올린다.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살 빠졌다’ 하는 말을 듣는다면 그건 얼굴살이 빠졌다는 말이며, 늙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원래 '동안' 소리 듣는 축에 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제 나이에 맞는 얼굴은 되지 않나 여기고 살았건만 이젠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상대의 입장 생각 않고 묻고 또 물은 적이 꽤나 된다.
"아니 얼굴이 왜 그래?"
"너 어디 아프니?"
"너무 많이 상했다."
그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건만 그는 이미 나 말고도 다른 이로부터 숱하게 들었을 텐데 또 들어야 했으니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적당히 눈치껏 물었어야 했건만.
<넷>
20세기 최고 천재로 알려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세 살이 되어도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7살이 되었을 때도 부모님이 시키는 간단한 심부름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인지 발달이 꽤 늦었던 편에 속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는 독일 김나지움에 진학했는데, 수학과 물리학에만 심취하여 당시 교육과정을 뛰어넘어 교사들도 쩔쩔매는 질문을 했다. 이런 아인슈타인의 연령을 초월하는 질문에 선생님들은 “너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이나 한다.”는 식으로 매도했다.
그때부터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주입식 교육에 굉장히 반감 가지게 되어 훗날 학풍이 자유로운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공부하게 된다. 그때 단 한 명의 교사라도 “네가 수학과학 방면에는 정말 탁월하구나. 너는 장차 위대한 과학자가 될 거야.” 했더라면 그 공을 스위스에 뺏기지 않았을 텐데.
나도 교사생활 동안 아이들의 기를 꺾는 말 많이 했다. 거칠게 행동하는 애를 보면 “너 같은 녀석은 나중에 ~~~ 할 놈이다.”라고 나무랐으니. 그때 거꾸로 “너는 매우 생기 있고 활동적이라 앞으로 그런 면을 잘 개발하여 진로를 정해 나아가면 좋겠네.” 했더라면. 조금만 표현을 바꾸었더라면 기를 죽이지 않고 기를 살려 그의 길을 잘 헤쳐나가게 했으련만.
힘을 돋우는 말과 힘을 빼게 하는 말의 차이는 크지 않다. 한마디만 더하거나 빼면 되니까. 이는 배움의 적고 많음과도 관련 없다. 국어교사이지만 나는 얼마나 실수하며 살아왔던가. 아니 앞으로 또 얼마나 실수할 것인가.
딱 3초만 생각해서 말했더라면, 아니 앞으로 3초만 심호흡한 뒤 말하면 되는데 그게 가능할지...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