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과 아들의 눈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98)

@. 오늘 글은 현재와 20년 전을 겹쳐가며 썼습니다.



* 엄마의 눈과 아들의 눈 *



<현재>



지난주 목요일(11/13), 9시까지 시내 나갈 일이 있어 차를 몰았는데 군데군데 교통 통제가 진행되었다. APEC도 끝났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하다가 모 고등학교 앞을 지날 때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세상에, 대입수능일이건만! 그것도 모르고 차를 몰고 나왔으니...

모임을 마련한 이가 설마 이런 사실 몰랐을까 하여 문자 뒤적이니 며칠 전에 공지가 와 있었다. “모임날이 수능일이라 1시간 연기합니다” 하고. 그러니 순전히 내 잘못, 잘못도 아주 큰 잘못. 교사 출신이, 그것도 인문고 3학년 담임 수년간 담당했던 사람이.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도 부끄럽다.


이제 수능일은 나와 상관없는 날이 되었다. 쉬웠는지 어려웠는지, 심지어 언어영역(이도 '국어'로 바뀌었음)은 어땠는지 하는 사항도 다 관심 밖. 5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 아주 가끔 대입 앞둔 자제를 둔 아는 이로부터 진학 관련 상담을 받고자 하는 전화가 왔지만 사양했다. 아는 게 있어야지...


(수능일, 교문을 붙잡고 기도하는 어머니 '[데일리안] 2025. 11. 13'에서)


<2005년 2월 25일>



2005년 1월 어느 일요일, 울산 기상대 관측 이래 가장 눈이 많이 왔다는 날 아침이다. 그러니까 달내마을 오기 몇 달 전 울산 아파트 살 때 일이다.

“여보, 눈이 와요. 엄청 쏟아져요.”

잠결에 들려온 소리에 뭔 말인가 하고 눈을 비비며 아내를 올려다보니,

“지금 새벽미사 갔다 오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잖아요. 이렇게 한 두 시간만 내려도 눈천지가 될 텐데…”

“울산에서 눈 쌓이기를 바라기는… 나 잠 더 자야 하니까 깨우지 않도록 해.”


그리고 다시 꿈속을 여행하고 있는데 얼굴 위에 덮어지는 몹시도 찬 기운에 화들짝 눈을 떴다. 아내의 두 손이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눈이 정말 엄청나게 쌓였어요. 방금 다시 나갔다 왔는데 아파트 앞 도로는 물론, 차 위에도 온통 눈이에요.”

“거짓말 마.”

“당신 얼굴 문지른 게 눈뭉친데도 모르겠어요? 못 미더우면 한 번 나가보세요.”

따뜻한 이불에서 나오기 싫은 걸 설마 하며 억지로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었더니 정말 하얀 솜가루 뿌려놓은 듯 온통 하양 세상이었다. 얼마 만에 보는 눈인가. 이렇게 신나게 내린 눈은 처음이었다.


(몇 년 전 우리 텃밭에 내린 눈)


“우리 빨리 아침 먹고 눈구경 가요.”

아내는 나보다 더 신이 나 있었다. 그녀도 이렇게 많이 내린 눈은 처음이었으니… 그때 아내의 휴대폰이 요란히 소리를 냈다.

“누구라고? ㅇㅇ? 아이고 우리 아들! 그래 어떻게 지내니?”

얼마 전에 입대한 아들로부터 온 전화인 듯.

“으응 엄마 아빠는 잘 있어. 뭐라고 ○○사단에 배치받았다고… 으응 그래. 참 거기 춥지? 그런데 눈은 안 와? 여기는 억수로 쏟아지는데…

뭐라고? 일요일인데도 쉬지 못하고 여태까지 눈 치우고 있었다고…”

아내의 목소리가 갑자기 잠기면서 휴대폰도 아래로 쳐졌다.


“잠깐 시간 내 거는 전화라 오래 할 수 없다 하여 당신한테 바꿔줄 겨를이 없었어요.”

말 안 해도 알 만했다. 훈련 끝내고 자대에 배치받고 처음 맞이한 일요일 자유시간에 건 전화였으리라.

아내는 아들과 제대로 얘기 못 나눈 게 못내 아쉬운지 휴대폰을 쉬 덮지 못했다.

“집에 있을 때면 일요일 아침엔 열한 시가 넘어야 일어나곤 했는데… 새벽같이 일어나 눈 치운다고…”

그새 눈이 붉어져 있었다. 장난 삼아 슬쩍 말을 붙여보았다.

“우리 눈 구경 갈래?”

“이 남자가 미쳤나? 아들은 눈 때문에 죽도록 고생하고 있는데…”


(눈 치우는 군인들, 구글 이미지에서)


며칠 뒤 문무대왕면 소재 기림사 근처 주말주택(이 글을 구상하는 도중에 팔렸음)에 주말마다 가는데, 한 주 빠졌다가 토요일에 그리로 가는 중이었다.

‘주전’ 지나 ‘판지마을’쯤 왔을까, 군인 두 명이 손을 들고 세우는 게 아닌가.

그날따라 뒷좌석에 짐을 많이 실어 두 사람을 태우려면 짐을 다시 내려 트렁크에 옮겨 실어야 하는 귀찮음 때문에 그냥 가려는데 아내가 세우라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세웠다. 아니 세워야만 했다. 요즘 들어서 내 위세가 상당히 내리막길로 치달림을 잘 알기에.


전에도 가끔씩 지나는 도중 군인이 손을 들고 있으면 태워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말 가끔이었다. 조금이라도 귀찮거나 (예를 들면 이번처럼 짐이 많을 때), 피곤하면 못 본 체 지나쳤다. 그러던 우리 부부가 이제 그냥 지나치지 못함은 아들 때문이다.

아들로 하여 9시 뉴스에 나오는 군대 소식 하나하나에 민감해졌다. 얼마 전(2005년 1월) 부하에게 똥 먹인 사건, 상관에게 구타당해 죽은 부하 사건 (같은 해 6월) 등등.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괜히 간이 오그라들고, 속상하고, 분노하고… 아들로 하여 군인, 아니 군대 관련 소식에 예민해진 걸 보면서 문득 내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 상관 부하 폭행 이미지 '[인천일보] 2022. 1. 5')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던 일들, 아니 똥을 먹이고 폭력사망 사건이 대수롭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일이 너무나 빈번한 일상사여서 무관심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런 무관심도 결국 아들이 관련되면서 예민해진 것이다. 아니면 잠깐 혀 차다가 지나쳤을지도.



<다시 현재로>



우리 부부는 지금도 군 관련 뉴스를 보고 관심 가지는가? 아니다. 아들의 제대와 함께 끝났으니 이미 20전의 일이다. 지금은 복무연한도 모른다. 혹 '병사 월급이 100만 넘는다다' 하는 가십성 기사 정도에나 관심 가질까.

아직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고등학생이나 중학생 초등학생을 둔 가정에서 가장 관심거리는 대학 진학이리라. 그래서 대입 관련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어떻게든 좋은 점수를 받아 명문대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직업, 지위, 학벌, 경제력 따질 것 없이 모두 한결같으니까.


헌데 우리 부부는 이제 대입 관련 뉴스는 보지 않는다. 아니 관심을 완전히 껐다. 대입 준비해야 할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군 관련 문제도, 대입날짜도 잊고 지낼 정도가 되었다. 결국 나는 내 중심의 사고 영역에서만 놀고 있는 셈이다.


(수능 끝낸 기쁨에 환호하는 수험생 '[뉴시스] 2025. 11. 16')

요즘 자영업자가 힘들다는 기사가 방송마다 나온다. 다행(?)인지 내 주변엔 그런 일 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칠 뿐. 대신 아들 회사 관련 뉴스가 나오면 신경 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나는 나와 직접 관련 있는 일에만 관심을 가질까. 그렇지 않으면 관심을 끄고. 따지고 보면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내가 무관심하게 보내는 사안들 중 많은 것들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나를 칠 지도 모르는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모든 일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 대신 모두 나에게로 반드시 되돌아온다. 왜 이걸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왜 이런 사안에 대하여 무감각했을까, 왜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무리 내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안을 보려 하나 주변의 상황은 결코 객관적이 될 수 없다. 아니 되어서도 안 된다. 비정규직 같은 일들은 현재 나와 무관한 듯 보이나 절대로 나를 그냥 둔 채 곁을 지나쳐가지 않는다. 당장 딸과 며느리가 맞닥뜨리는 일이 될지도.


(문 닫는 길거리 상점들 '[여수넷 통뉴스] 2024. 1. 16')

올겨울 눈이 내릴 때마다 아들 같은, 아니 손자 같은 군인들이 치울 고생을 잠시라도 생각하며 보낼 수 없을까? 대입이 전부인 나라에서 수능일 때만이라도 학생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를 얻었으면 하고 기도할 수 없을까?

군대와 대입뿐 아니라 아픔과 힘듦이 있는 모든 곳에 관심의 작은 등잔불이라도 밝혀두었으면… 이제 한 장 반 남은 달력이 다 떨어져 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곧이다. 이제부터라도 내 문제가 아니라고 내팽개쳤던 일에 작은 관심이라도 가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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