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31)

제431편 : 김충규 시인의 '바닥의 힘'

@. 오늘은 김충규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바닥의 힘
김충규

갓 태어나 바닥에서 자란 사람, 갓 죽을 때 바닥에 눕는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어냐, 한 문장으로 줄이면 바닥에서 시작하여 바닥으로 끝나는 것이다 바닥을 딛고 일어난 힘으로 걸었고 뛰었고 지치면 쉬었고 하고 싶으면 바닥에서 정사를 나눴고 병들면 바닥에 누웠다 지하역의 노숙자도 청와대의 대통령도 바닥에 눕고 바닥을 딛고 살아간다 제 아무리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도 추락하기 시작하면 바닥에 닿는다 바닥은 추락의 마지막 지점, 바닥을 피해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해도 그곳에도 바닥이 있다 죽어 무덤에 대한 애착을 갖는 것도 바닥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바닥에 등을 댄다는 것, 그것은 바닥의 힘에 순응하는 것,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준 힘으로 오늘 내가 호흡을 이어간다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주지 않으면 영영 바닥에서 등을 뗄 수가 없다 호흡 정지, 죽음이다 생과 사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건 바로 바닥이다 바닥이 신(神)이다
- [아무 망설임 없이](2010년)

#. 김충규 시인(1965년 ~ 2012년) : 진주 출신으로 1998년 [문학동네] 통해 등단.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낙타를 글감으로 한 시를 많이 써 ‘낙타시인’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생전에 출판사 [문학의 전당] 대표와 계간 [시인시각] 발행인도 맡음.




<함께 나누기>

제가 이 시를 읽고 떠올린 사진은 교황님께서 어느 나라든 가시면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허리 굽혀 바닥에 입 맞추는 장면입니다. 그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그 나라의 모든 걸 다 포용하겠다는 뜻이랍니다.
바닥은 보통 ‘아이들이 땅바닥에서 팽이를 돌린다’처럼 삶의 공간 같은 기능을 합니다만, 심리적인 용어로 쓰일 때도 많습니다. ‘밑바닥 인생’ ‘이제 완전 바닥이니 더 내려갈 곳은 없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 ‘바닥에 떨어져 본 사람만이 성공의 날개를 달 자격이 있다’ 등.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람은 바닥을 떠나 살아갈 수 없습니다. 걸어다닐 때 땅바닥을 밟아야 하며, 잠을 잘 때는 방바닥에 몸을 눕혀야 하며, 공부할 때ㆍ 일할 때ㆍ 놀 때ㆍ 운동할 때도 발 닿는 부분은 모두 바닥입니다.
그러니 시에서처럼 ‘사람의 일생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바닥에서 시작해 바닥으로 끝난다’라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지하철역의 노숙자도 청와대의 대통령도 바닥을 디디고 서며 바닥에 등을 눕힌다는 점에선 다 평등합니다.

"바닥은 추락의 마지막 지점, 바닥을 피해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해도 그곳에도 바닥이 있다"

그렇지요. 낙하산을 타고 하늘에서 뛰어내리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든 우리 몸의 최종 귀착지는 바닥입니다. 심지어 시에선 죽어 무덤에 묻혀 등 눕히기를 바라는 풍습조차 우리 몸이 바닥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랍니다.

"바닥에 등을 댄다는 것, 그것은 바닥의 힘에 순응하는 것,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준 힘으로 오늘 내가 호흡을 이어간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도 어느 순간 추락하기 시작하면 바닥에 닿습니다. 까마득하게 추락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려 할 때 디딜 곳도 바닥이라, 그 바닥이 버팀이 되고 힘이 돼 줍니다.
사람은 갓 태어나 바닥에 누워 자라고, 죽어서는 바닥에 눕습니다. 그 점을 어느 글쟁이는 이리 말했지요 '태어나선 수평인간이다가 자라면서 수직인간(직립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수평인간이 된다'라고.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주지 않으면 영영 바닥에서 등을 뗄 수가 없다"

바닥의 기능이라 할까, 힘이라 할까? 바닥이 등을 밀어 올려줘야 바닥을 딛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닥이 밀어주는 힘으로 바닥을 딛고, 그 일어난 힘으로 걷고 뛰고 쉬고 눕습니다.

"생과 사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건 바로 바닥이다 / 바닥이 신(神)이다"

그러니 바닥은 신과 같아서 우리의 삶과 죽음에 다 관여합니다. 하기야 우리 전체 몸을 지탱하는 건 (발)'바닥', 모든 것의 근본 뿌리는 (밑)'바닥',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선 (땅)'바닥', 몸을 편히 눕히고 쉬는 (방)'바닥',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혓)'바닥'에서 비롯되니까요.

그대는 오늘 하루, 어느 바닥에서 시작하렵니까?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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