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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10. 2022

목우씨의 '도둑 일기'

프롤로그 : 중편소설 연재에 들어가면서

  * 목우씨의 ‘도둑 일기’ *

        - 프롤로그 -



  <도둑 일기>란 중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연재에 앞서 제가 십 년 넘게 날마다 아는 이들에게 시를 배달하는데, 어제 보낸 시를 소개합니다.


       달려라 도둑

                        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 글쎄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네랑 거실에서 술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말야.

    앞집 아저씨는 아직 제정신이 아니다.

  ― 그러게, 그리고 요즘 현금 가지고 있는 집이 어딨어. 다 카드 쓰지. 거 돌대가리 아냐? 라고 거드는 피아노 교습소집 주인 말끝에 명절내가 난다.

    한참 있다가 누군가 이랬다.

  ―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이웃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밤이슬 내린 차 지붕에 화석처럼 찍혀 있는 도둑의 족적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한 사내가 열나흘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 [내일을 여는 작가] (2008년 겨울호)


  *. 퉁기다 : 진행하던 일이 어긋나다

  *. 여북(했으면) : 오죽했으면


  #. 이상국 시인(1946년생) :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오랫동안 설악산 아래 살며 불교잡지 [유심]지 주간과 [설악신문] 대표를 역임했으며, 작년 '한국작가회의' 회장으로 당선됨.


    <함께 읽기>


  도둑 역의 주인공을 호감형으로 표현한 작품이 꽤 됩니다. 세계 명작인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은 물론,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 빅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이란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이 시 속의 도둑을 추론해 봅니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란 시행을 보면 대충 드러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듯이 가장 풍족한 날이 추석입니다. 그럼에도 남의 집 담을 넘을 정도라면 얼마나 궁핍한지 알겠지요. 그리고 이 도둑은 분명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입니다. 가족들이 가장 많이 모인 추석날, 즉 가장 들킬 확률이 높은 날을 선택했으니까요. 


  "나는 그때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한 사내가 열나흘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화자도 도둑이 엄청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거라고 여깁니다. 그러니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표현을 했겠지요. 예전에 읽은 글에 이런 구절을 본 적 있습니다. '도적을 나무라지 말고 도적을 낳게 만든 사회를 꾸짖어라'라고

  화자는 달아나는 도둑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도둑이야!'란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달아나도록 방조한 셈입니다. 제목을 보니 제 딸 아들이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가 생각납니다. 이 만화를 떠올림은 단순히 제목이 비슷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둑이 하니처럼 빨리 달려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고 무사히 달아나기를 비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담장을 넘은 도둑에 대해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도둑이 남긴 발자국을 보며 “달려라 도둑”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화자나 같은 마음입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함은 범죄자를 옹호하렴이 아니라 가난한 이를 구휼 못하는 우리 사회를 꾸짖는 말로 들립니다. 어쩌면 그 도둑을 만든 게 나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상국 시인의 「달려라 도둑」 해설을 곁들임은 오늘부터 연재할 제 소설에 이끄는 시로서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재미로 또는 축재로 도둑질하는 인간을 제외하면, 정말 생계 때문에 굶주리는 자식들 때문에 남의 집 담을 넘습니다. 우린 그런 도둑에 철퇴를 가하고.

  당연히 도둑질은 나쁩니다. 그래서 도둑을 비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함에도 생계형 좀도둑보다 더 큰 나쁜 도둑들, 남을 짓밟으면서 축재를 하는 도둑들이 좀 많습니까. 뻥뻥 큰소리치며 사는 도둑들, 떵떵 거리며 사는 도둑들, 꽝꽝 세상 요란하게 하는 도둑들…


  오늘부터 연재하는 <도둑 일기>는 그런 세태를 풍자합니다. 현실감을 주기 위해 입말과 욕이 그대로 나옴에 양해를 구합니다.


  *. 커버 사진은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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